12.2~4 칠레여행 12~14일차, 산티아고부터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까지

12.9 오후 볼리비아 우유니 Hotel Avenida에서 작성

 

처음 남미에 올 때만 해도 칠레라는 나라에서 2주나 보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하루이틀 지내다 보니 남미 국가들 중 칠레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산티아고에 1시쯤 도착해 예약해놓은 숙소로 갔다. 발파라이소 가기 전에 묵었던 곳에 있고 싶었지만 이미 예약이 다 차서 터미널과 가까운 곳으로 예약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3층침대의 3층에서 자 보게 되었다. 올라가는 데 무서운 건 둘째치고 한 번 올라가면 내려가기가 귀찮아서 계속 3층에서 있게 되는 것 같다. 저녁에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몰랐는데도 내려가기 싫어서 그냥 잤으니..



산티아고는 이미 대부분 봤기 때문에 네시에 볼리비아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오는 것 말고는 그냥 푹 쉬기로 했다. 숙소 근처 레스토랑에서 오늘의 메뉴를 시켰는데 음식이 얼마나 많이 나오던지,(사진에 케이크 + 음료까지 포함) 저녁때까지 소화가 안 되서 잘 때까지 더 안 먹었다.



볼리비아 비자 받고 근처의 큰 몰 구경. 12월 초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인데, 눈이 안 오는 한여름인 이 곳에서 트리에 인공눈을 뿌려대는게 이색적이면서도 뭔가 안타까웠.

 


 

다음날 아침 아따까마까지 가는 24시간짜리 버스를 탄다. 원래 48000페소(90000원정도)인데 왠지 모르게할인을 받아 36000페소 정도에 갈 수 있었다.리우에서 이과수 갈 때처럼 노트북 하거나 책 보다가 틈틈이 자고, 배고파서 빵 먹고 하다보니 24시간이 지난 그 다음날 아침 9에 드디어 칠레의 북쪽인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San Pedro de Atacama)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 틈틈이 사먹으려고 했는데 먹을게 빵 사이에 햄이나 치즈 한장 끼운게 전부인 성의없는 샌드위치가 전부여서 (심지어 버스회사에서 주는 간식도 똑같았다) 세끼를 다 맛없는 빵과 주스로 때워야만 했다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에서는 절대 빵을 먹지 않으리.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는 관광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다. 건물들이나 간판들도 다 사막분위기가 나게 디자인 해 놓았고, 각종 여행자 편의시설들이 몰려있어서 여행하기는 편한 곳. 세계에서 제일 건조한 사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막(달의 계곡 투어)이나 호수(소금 호수나 여러 라군들)를 볼 수 있는 투어를 많이 하는데, 나는 사막도 별로 관심없고 빨리 우유니로 넘어가고 싶어서 숙소를 잡은 다음 오후에 하는 소금 호수투어랑 다음날 아침 우유니로 떠날 23일 투어만 신청했다. (우유니로 가는 투어 얘기는 다음 편에서)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카페 코르타도Cafe Cortado. 카푸치노에서 설탕을 뺀 맛이라 별 특별함은 없었다.


하루 먼저 간 한국인 부부(산티아고와 발파라이소에서 만난 그 분들이다) 를 만나 오랜만에 푸짐하게 먹은 고기. 내가 먹은 소고기는 완전히 장조림이랑 똑 같은 맛이라 실패했다..

 

조금 쉬다가 소금호수(Laguna Cejar) 투어로 고고! 사해처럼 가만히만 있어도 몸이 뜨는 소금호수는 다른 곳에서 경험하기 힘든 곳이라 여기서 꼭 하고 싶었다.



겉보기에는 별다른 게 없는 호수이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정말로 몸이 뜬다! 수영하기 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적응이 안 되서 수영하기엔 더 어려운 것 같다. 게다가 잘못해서 물이 입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바닷물보다 짠 소금호수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이드도 수영은 되도록 하지 말라고 해서 그냥 떠다니면서 놀았다.



책 읽는 설정샷. 책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한 많은 노력이 숨어있는 사진.ㅋㅋ





 한 시간 반이 금방 지나가버렸다. 수영할 때는 좋았는데, 나중에 소금기를 다 털어내는게 귀찮았다. 샤워기가 있지만 샤워를 해도 소금기가 쉽게 가시진 않는다.



두 번째로 이름모를 큰 구멍(Hole)에 도착했다. 호수가 아니라 구멍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곳이 사람들이 광물 채취를 위해 만들어 낸 인공적인 구멍이기 때문이다. 광물 채취를 더 이상 하지 않아 물이 차올라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데, 물이 깊어서 옷벗고 다이빙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너무 추울 것 같아서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



마지막으로는 탁 트인 호수 같은 곳에 도착했고, 여기서 석양을 보고 다시 아따까마로 돌아갔다. 전반적으로 알차고 만족스러웠던 투어!

 





칠레에서의 마지막은 다시 한번 세비체로 장식했다. 산티아고에서 두 번 먹어봤지만 너무 달라서 어떤 게 전형적인 세비체인지 몰랐는데, 세 번째로 먹어보니 두 번째랑 이번에 먹은 게 제대로 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 드디어 칠레를 떠나 남미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우유니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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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9 ~12.1 칠레여행 9~11일차 in 발파라이소

12.9 우유니 Hotel Avenida에서 작성

 

 칠레에서 두 시간 떨어진 항구도시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발파라이소Valparaiso. 남미에 와서 가이드북을 펼치기 전까지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알고보니 온갖 색채로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여서 3일 동안 이곳만의 색다른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산티아고 버스터미널의 아침. 두 시간이지만 버스가 딜레이 되어서 한시쯤에나 도착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에 세워진 이 항구도시는 한때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주요 항구였지만, 파나마운하가 개통되고 대지진을 겪으면서 지금은 칠레의 수출항과 해군본부로 기능하고 있다. 19세기~20세기에 지은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아름다운 도시이고 많은 예술가들과 히피들이 몰려들어 더욱 다채로운 문화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구시가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인 쎄로 알레그레Cerro Alegre지역.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언덕을 걸어 올라와서 간신히 숙소를 잡았다. 숙소는 산티아고보다 비싼 편.



 일단 점심부터. 평범한(?) 샌드위치랑 샐러드를 파는 집이었다.




발파라이소에서는 산티아고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와 그분들이 한인민박에서 만난 다른 한국인 부부까지 다섯 명이 같이 다녔다. 새로 만난 부부는 특이하게도 두분 다 농아였는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음에도 이렇게 여행하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대화가 되지 않아도 글이랑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고, 현지 농아들에게 도움을 받아 (수화는 50%이상이 전세계적으로 비슷해서 의사소통이 쉽다고 한다) 여행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어차피 스페인어를 모르면 일반 사람도 농아나 다름없는 셈인데, 왜 장애인은 여행을 하기 어렵다고만 생각했을까 하고 반성하게 된다

 

점심을 먹고 언덕을 내려와 조금 더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날씨가 어두워서 사진은 많이 못 찍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엔 언덕을 오르기 위해 발파라이소의 명물인 아센소르Ascensor를 탔다. 케이블카라고 불러야 할지 엘리베이터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한 이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언덕 아래에서부터 언덕 위까지 연결된 레일을 통해 편하게 이동할 수 있고, 지은 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꾸준한 유지관리로 지금까지도 단순한 관광용이 아니라 효과적인 교통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저녁은 야심차게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사서 요리했는데, 소고기를 오븐에 굽는 바람에 육포같이 되어버려서 절반의 성공..

 

 

다음 날.

어제와는 다르게 하늘이 맑아서 사진찍기 딱 좋은 날이었다.

 






 

사진을 열심히 찍으면서 돌아다니다가 대형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같이 다니는 일행이 스마트폰을 눈앞에서 소매치기 당한 것이었다ㅠㅠ. 여자분이 혼자 떨어져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사람이 튀어나오더니 낚아채서 골목길로 뛰어갔다! 나머지 일행들이 열심히 따라가봤지만 미로 같은 골목에서 현지인을 따라잡는 건 이미 불가능.. 진짜 말로만 들었지 눈앞에서 소매치기가 일어나는 걸 보니 잃어버렸던 경계심이 다시 살아났다.

 

호스텔로 돌아가 잠시 사태를 수습한 다음.. 점심만 먹고 나머지 일행들은 산티아고로 돌아가고 난 여기가 좋아서 더 머무르기로 했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먹은 점심으로 먹은 이런저런 요리들. 아프리카에서 윌프리드가 찍는대로 찍어봤는데, 이렇게 위에서 찍으니 별 것 아닌 요리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밥을 먹고 일행분들을 보낸 후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발파라이소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느낀 건 벽화를 찍으려면 햇볕이 잘 들 때 찍어야 잘 나온다는 것이었다.

벽화가 아름다워도 그림자가 진 상태에서 찍으니 잘 안 나와서, 오늘은 오후라 주로 건물 서쪽 벽화를 찍고 내일 아침에 햇볕이 반대편으로 들 때 맞은편 벽화들을 찍기로 했다. 시간에 따라 같은 장소에서도 사진 찍는 포인트가 달라질 수 있다니! 평범하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깨달음이었다.



 

    걷다보니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 박물관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오길래 한번 따라가 보았다. 이 건물은 칠레의 대문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가 실제 살았던 집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정표가 있길래 금방 도착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숙소 쪽에서 한 시간이나 걸어가야 했다.. 길도 잃을 뻔 했지만 친절한 현지인들 덕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건물 안에서 찍은 사진. 여기 들어가기 전엔 파블로 네루다라는 사람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박물관이 잘 꾸며져 있어서 많이 알 수 있었다. 강추! 이 곳에서 발파라이소를 바라보니 왜 파블로 네루다가 이 곳에 집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서 도시를 둘러보면 그 어느 장소보다 아름다운 발파라이소를 볼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먹고 그렇게 알찬 둘째날은 마무리.


 

셋째 날에는 좀 더 멀리 나가서 어제 담지 못한 풍경들을 담아보기로 했다.

 







원래는 도시 북쪽의 Cerro Artilleria를 올라갔다가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돌아오는 언덕길에서 갑자기 어떤 아주머니가 날 부르더니 그쪽으로 가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해서(손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하심..) 순간 오싹해져서 바로 반대편 시내버스를 탔다. 발파라이소에서 만난 칠레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때는 오후 한시라 바로 숙소로 돌아가긴 아까워서, 버스가 가는 대로 앉아가다가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곳에서 내리니 비냐 델 마르(Vina del mar)라는 도시의 큰 몰에 도착했다. 발파라이소와 바로 붙어있는 또 다른 항구도시인 비냐 델 마르는 발파라이소보다는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곳이다.



 

푸드코트에서 고기, 샐러드, 감자/밥을 골라서 담을 수 있는 셀프음식점에서 점심을 사먹었다. 소고기, 돼지고기, 연어 등등이 있었는데 소고기를 시키는 바람에 한끼에 14000원짜리가 되어버렸지만 맛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서 인터스텔라까지 봤다. 원래는 한국가서 보려고 했는데 워낙 잘 만든 영화라길래 봤지만, 영어듣기의 한계를 느끼고 숙소에 와서 다시 리뷰를 찾아봐야만 했다..(스페인어 더빙이 아닌게 천만다행)

 





영화를 보고 7 나왔지만 아직 이곳의 날씨는 맑음. 일몰까지 기다려보려고 했는데 할 게 정말 없어서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이렇게 계획없이 즉흥적이었던 발파라이소에서의 마지막 날이 끝났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도시 발파라이소. 앞으로도 이런 모습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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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 28 칠레여행 7,8일차 in 산티아고

12.5 저녁 볼리비아 우유니로 가는 길에서 작성

 

엘 칼라파테 갈 때의 교훈 덕분에 이번에는 공항에서 노숙을 할 때 푹 잤고, 덕분에 산티아고에서는 도착한 첫날부터 잘 돌아다닐 수 있었다. 산티아고는 사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거쳐가는 도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별로 볼 게 많진 않아서 주로 맛있는 음식을 찾으려고 돌아다녔다.



 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내려서 호스텔까지 걸어가면서 시내구경을 좀 했다. 산티아고의 첫인상은 그냥 대도시 그 자체. 12시쯤 도착해 짐을 풀고 간단히 시내구경을 나섰다.



 

 먼저 찾아간 곳은 중앙수산시장(Central Mercado). 가이드북에도 추천되어 있고 칠레가 해산물이 풍부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엄청 기대하고 갔지만,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의 큰 수산시장들에 비하면 너무 작은 사이즈여서 실망스러웠다.



  칠레 해산물을 먹어보기 위해 레스토랑에 가서 일단 앉, 론리플래닛에서 칠레에 가면 세비체Ceviche랑 피스코 사워(Pisco Sour)를 먹어보라고 하길래 Ceviche가 뭔지도 모르고 일단 시킴.

 



 음.. 이게 Ceviche인데, 일단 생긴게 죽같이 생겨서 첫인상부터 별로였고 생선살에 야채를 섞고 신맛나는 소스를 부은 오묘한 맛에다, 신 맛이 얼마나 센지 먹으면서 코끝이 마비되는 기분이어서 빵으로 중화(?)시켜가면서 먹어야 했다. 피스코 사워는 기대했던 대로 시큼한 칵테일 맛. Ceviche가 가격에 비해 실망스러워서 나중에 한번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건 칠레 국민음료라는 모떼 꼰 우에시요(Mote Con Huesillo). 옥수수와 비슷한 곡식에 설탕에 절인 살구를 부은 것인데, 옥수수에 복숭아통조림을 부은 맛이다. 옥수수가 시원한 젤리처럼 씹혀서 더울 때 먹기 좋고 오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몇 번 더 사먹음

길거리 식당의 메뉴. 보통 직장인들이 많이 먹는 식당인 것 같았고, 그냥 보통 서양식 메뉴라 별로 특별한 점은 찾을 수 없다.

 

비록 몇 시간이지만 산티아고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 일단 물가가 비싸다는 거였다. 우리돈으로 지하철 1400, 햄버거세트 7000, 레스토랑에 앉아서 먹으면 15000~20000원은 쉽게 나오는데, 칠레가 그렇게 잘 사는 나라가 아닌데도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비싸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 (무슨 돈으로 이렇게 비싼 음식을 먹고 다니는거지?)

 

그리고 또다른 문제는 칠레 화폐단위가 우리나라랑 비슷해서, 칠레 1000페소면 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인데도 자꾸 천원만 쓰는 느낌이 들어 과소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살 때는 왠지 싸게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 계산해보면 우리나라보다 더 비싸게 사는 경우가 많다.



 시내 중심부의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대부분의 도시마다 아르마스 광장이 있길래 뭔지 찾아봤더니, 스페인식 도시계획에서 시내의 한 부분을 광장으로 만들어 외부의 침입시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무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아르마스 광장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은 아쉽게도 공사중.



대성당도 공사중.ㅜㅜ



이 곳은 역사박물관인데, 칠레의 역사 자체가 짧아서인지 아니면 박물관에 신경을 많이 안 써서 그런지 정말 작았고, 한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크기였다.



정부 건물



시내 문화센터에 있던 상징물.

 

산티아고 시에서 산티아고를 문화가 풍부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박물관도 많이 짓고 문화센터나 공연장도 꽤 만들었다지만, 아직 리우 데 자네이루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산타 루치아라는 시내에 있는 작은 언덕을 올라가본다.

 



언덕 위에서 본 산티아고는 90년대의 서울을 떠올리게 했다. 90년대 서울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예전엔 이런 느낌이었겠구나..싶었다.



저녁은 점심에 먹은 세비체가 왠지 아쉬워서 가이드북에 추천된 세비체를 파는 식당으로 갔다. 너무 일찍갔는지 썰렁하지만.. 꿋꿋하게 혼자 앉아서 메뉴를 시켰다.



  두번째로 먹은 세비체는 점심에 먹었던 똑같은 메뉴가 맞나 싶을 정도로 180도 다른 모습이었고, 훨씬 맛있었다! 보이는대로 샐러드에 연어, 새우등 해산물을 섞어 주는데, 점심때보다 신맛도 덜해서 대만족.

 

 





두 번째 날.

 

          첫 날 대부분의 시내 주요장소는 다 돌아봤기 때문에 오늘은 볼리비아 대사관에 가서 우선 비자를 받고 성모마리아 상이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는 게 목표였다. 다른 남미국가와는 달리 볼리비아만 들어갈 때 비자를 미리 받아놓아야 해서 귀찮게도 대사관까지 가야한다. (물론 안 받아도 국경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메트로 Tobalaba역에서 큰 몰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초라한 볼리비아 대사관볼리비아 국기가 멀리서는 잘 안보여서 주소로 찾아갔다대사가 직접 비자 스탬프를 찍어주는 것 같은 미니 대사관이다. 블로그나 지인들 말로는 비자 받기가 쉽다고 해서 오전에 접수하면 오후면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오마이갓.. 다음주 화요일 날 받으러 오라는 날벼락같은 얘기를 들었다. 원래는 비자를 오늘 받고 발파라이소를 12일로 다녀온 다음 월요일 아침에 떠나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틀이나 시간이 붕 떠버려서 정신이 없었다. 이런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배낭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  이렇게 된 거, 발파라이소에서 아예 34일 푹 쉬다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대사관을 나왔다.



         대사관에서 청주에서 오신 한국인 부부를 만나서 오후동안 일정을 함께 했고, 덕분에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점심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전체적인 일정이 비슷해서 여행 내내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밥을 얻어먹을 때마다 나도 나중에 여행을 다니다가 배낭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밥을 사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같이 맥주랑 피자도 먹고, 산티아고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산 크리스토발 언덕에 올라간다. 시간이 되면 걸어서 등반하고 싶었지만 올라가는 길을 못 찾아서 어쩔 수 없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리우에 예수상이 있다면 여기엔 성모마리아 상이 산티아고를 굽어보고 있는데, 동상 자체는 예수상만큼 멋지지만 뒤에 송전탑이 경치를 완전 버려놓아서 실망스러웠다. 관리도 하고 마케팅을 많이 하면 충분히 산티아고의 명물이 될 수 있을텐데 아직까지는 유명세를 타지 못했는지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썰렁하기만 하다.




  성모마리아 상보다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바로 이 납골당이었는데,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망자를 보내고 기억하는 지 직접 볼 수 있어서 관광객으로서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돌아오는 길.


 금요일이라 불금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거리는 정신이 없다. 확실히 브라질/아르헨티나에 있다가 칠레쪽으로 오니 사람들이 키도 작아지고 피부색도 까무잡잡해진 느낌이다.



저녁에는 서민체험을 해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숙소 근처 햄버거 가게로 갔다 (사실 첫날 너무 밥먹는데 돈을 많이 써서 반성의 의미로..)



 햄버거에 구운 고기를 넣어서 정체가 애매한 슈하스코버거 + 사과주스. 이렇게 간단히 먹어도 7천원씩 나오는 이곳은 바로 산티아고다. 빨리 이 곳을 벗어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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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26 칠레여행 4~6일차 in 토레스 델 파이네

12.1 저녁 칠레 발파라이소 Acuarela 호스텔에서 작성



집 떠난 지 세달째.

  인도에서 받아서 담아온 비정상회담을 보는데 3회인가 제임스 후퍼가 그런 말을 했다. 자기는 에베레스트 등반이 꿈이었는데 막상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고 나니 허무하고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제임스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몇년동안 긴 여행을 꿈꾸면서 지내왔는데, 대체 이게 끝나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가끔씩 여행이 지루하고 피곤하다가도, 한국으로 돌아간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지구 반바퀴 돌아 집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한국에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가고 싶지 않은 복잡한 기분으로 여행중.


 


 셋째날은 가장 힘든 코스 . 완만한 오르막길을 12km 올라간 뒤 짐을 놓고 전망대까지 다시 왕복 10km를 다녀온다. 마지막 전망대를 넷째날 아침 일출을 보러 갔다오는 사람이 많다지만 우린 그걸 몰라서..그냥 오늘 갔다왔다. 짐은 훨씬 가벼워졌지만, 아침부터 발이 아프고 물집까지 잡혀서 쉽지 않은 일정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온다.


 

 역시 아침은 오늘도 든든하게.



 현재 위치와 코스 정보를 알려주는 표지판. 이곳 표지판들은 참 예술적으로 잘 꾸며놓아서 볼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거의 산을 등지고 호수를 보면서 걷는 코스. 앞에는 이런 에메랄드 빛 호수가 있고,

 

 

 뒤를 돌아보면 산이 든든하게 서 있다. 나는 산을 더 좋아해 산을 보고 걷는 어제 코스가 더 좋았지만, 덕희형은 오늘같이 탁 트인 호수와 들판을 보면서 걷는게 더 맘에 든다고 하신다.



 가는 길에 계속 센 바람이 불었는데, 다행히 서풍이라 동쪽으로 걷는 우리는 편하게 바람의 도움을 받으며 갈 수 있었다. 어찌나 바람이 센지 호수 위로 물보라가 날려 이렇게 무지개가 생길 정도. 


  

  사람을 앞에서 찍으면 인물사진이 되고 뒤에서 찍으면 풍경사진이 된다고 누군가 그랬는데, 그 말이 마음에 든다.  





 올라가다가 길을 지나가는 말들을 발견. 여기서 말은 관광용이나 물자 운반용으로 쓰인다. 말을 끄는 직원들이 전부 아르헨티나 전통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있다. 덕희형이랑 어떻게 말이 가파른 길들을 지나갈 수 있을지 계속 토론(?)을 했다.



 UFO같이 보이는 신기한 구름. 



  넘어가면 바로 숙소가 나올것만 같은 작은 언덕(하지만 언덕을 넘으면 또 다른 오르막길이 있다)을 10개정도 지날 때쯤, 숙소와 전망대가 있는 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세시간. 거리상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30분이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바람이 문제였다. 산 정상에서 계곡 입구로 불어오는 바람이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조금 걸어가자 바람이 더 세져서 몸이 휘청거리더니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정말 사람을 날려버릴 것 같은 바람이 5분정도 부는 바람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돌벽에 포복자세로 붙어있어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람때문에 사람이 날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바람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런 바람에서 움직였다간 넘어져서 옆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날 바람이 초속 60km/h 였는데 순간 경험한 바람은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이틀동안 오면서 길 주변에 쓰러진 나무들이 많아 왜 이런건지 이런저런 추측을 했었는데, 이 바람을 겪고 나니 바람때문에 나무가 뽑혀서 쓰러진걸로 결론을 내렸다.


 바람이 세게 분 곳이 바람길이었던지 이곳을 지나니 숲이 바람을 막아줘서 그렇게 센 바람이 불진 않았고, 나중에 만난 다른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역시 그곳에서 비슷한 바람을 맞았다고 한다. 결국 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Chileno 캠핑장에 도착. 여기서도도 강풍이 부는건 마찬가지였지만 걸을만 했다. 



 덕희형이 사주신 콜라와 빵. 흔히 먹는 콜라와 빵인데 여기서 먹으니 왜이렇게 감동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둘 다 딱 캠핑장에서 쓸 비용만 있어서 아무것도 못 사먹고 다녔는데, 덕희형이 카드로 긁어주셔서 은혜로운 빵과 콜라를 영접할 수 있었다.


 

 어제같이 텐트 자리잡느라 고생하지 않기 위해 미리미리 텐트를 치고, 30분정도 쉬다가 계속 계곡을 오른다. 마지막 전망대까지는 두시간이 걸렸고, 그 중 한시간은 정말 전체 트레킹 일정 중에서 제일 힘든시간이었다. 1km를 가면서 400m의 높이를 올라가야 하는데 경사가 가파른데다가 발은 아프고 목적지는 가도가도 안 나와서 '형 혼자 다녀오세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여기까지 고생해서 왔는데 마지막 전망대를 포기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오기로 한발한발 나아갔다. 



 

숲을 지나



돌 산을 오르고



가끔씩 부는 모래바람을 피하고 나니



 마지막 전망대인 호수에 드디어 도착할 수 있었다. 솔직히 전망 자체는 엘 찰텐에 있는 피츠로이 아래의 호수보다 별로였지만, 지금까지 온 일정과 오면서 한 고생들을 생각하면 이곳의 의미는 피츠로이 그 이상이었다. 여기 오면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힘들고 추워서 눈물 한방울 안나왔고.. '드디어 왔구나!!' 정도?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복잡미묘했다. 고생 끝에 감격적인 카타르시스가 온 것이다.



숙소부터 전망대까지. 4km라고 써있지만 저 거리는 걸어야 하는 거리가 아니라 직선거리인 것이 분명하다.





아쉬운 마음에 바로 내려가진 못하고 바위 뒤에 숨어 바람을 피하면서 여정의 하이라이트를 즐겼다. 누군가 등산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했는데, 현재의 한발 한발에 집중하면서 작은 목표들을 향해 나아가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등산과 인생이 가진 공통점이자 등산의 매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카타르시스를 맛 볼 수 있으니 서서에서 동으로 가는 코스가 더 낫다는 생각도. 



  부엌이 공사중이라 공사판에서 요리를 해야했지만, 등반 축하 기념 라면과 와인을 마시고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옆에서는 칠레에 사는 부자(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요리를 하고 있어서 간단히 얘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산티아고 가면 만나기로 하고 연락처까지 받음.



  마지막 날. 가벼운 짐으로 4~5km를 내리막길만 걸으면 되는 코스라 편하게 두시간정도 내려오면 끝이었다. 아침을 천천히 먹고 여유롭게 11시쯤 출발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와의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마지막 목적지인 Hotel Las Torres에 도착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돌아가니 4시 반. 



트레킹 애프터 사진. 트레킹 전과 비교하면 많이 초췌해졌음.


  장비 반납하고, 숙소 옮기고 (첫날 묵었던 야간호스텔에 숙소 예약해놨는데 직원이 까먹고 다른 예약을 받는 바람에 -.-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했다), 저녁 장 보고나니 어느새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덕희형, 나, 그리고 트레킹중 만난 정원이까지 셋이 토레스 델 파이네 완주기념 고기파티를 했다. 숙소 같이묵는 외국인들이 이거 너희 셋이 먹으려고 산거냐고 또 놀람 ㅋㅋ 하지만 당연히 다 해치웠다.



트레킹 완주 다음날. 덕희형은 다시 엘 칼라파테로 떠나고 그 다음날 아침비행기를 타기 전에 혼자 여유롭게 하루 쉬기로 했다. Josmar라는 이름의 이 호스텔은 론리플래닛에는 안나와있고 숙소 아주머니가 영어도 못 하시지만, 뭔가 가정집처럼 정감이 가는 곳이고 아주머니도 친절하다. 



  하루동안 노트북 쓰다가, 동네 산책좀 하고, 카페가서 커피 마시고 하면서 정말 말 그대로 푹~ 쉬었다. 마을에 아담하고 예쁜 건물들이 많아서 마을 산책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좋았고, 무거운 짐이 없으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







동네 대형마트 앞에서 핫도그를 파는 아저씨. 꼭 사먹어보고 싶었는데 마지막 날에 성공!



저녁으로 먹은 엄청 큰 칼조네.


  하루동안 쉬어서 많이 회복이 된 상태로 저녁 8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세시간 거리에 있는 푼타 아레나스라는 도시의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가 아침 6시이기 때문에 아침까지 공항에서 노숙. 버스 안에서 옆에 앉은 폴란드 사람이 자기 아시아 여행 많이 다녔다고 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너무 말이 많아서 .. 자는척 하고 틈틈이 창 밖 풍경을 구경했다. 



  그렇게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의 3박4일이 마무리되었다 (앞뒤 일정까지 합치면 5박6일). 이 곳은 정말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고 남미 여행, 아니 아마 이번 세계일주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이 될 것 같다. 나중에 꼭 다시 찾아올 거다. A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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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23 칠레여행 1~3일차 in 토레스 델 파이네

11.30 저녁 칠레 발파라이소 Acuarela 호스텔에서 작성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Tower of Paine). 파타고니아의 칠레 지역에 있는 이 곳은 칠레 제일의 국립공원이자 다녀온 사람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곳이라 남미에 올 때부터 많은 기대를 하고 왔다. 깎아지른 듯한 설산을 보며 3박4일간 트레킹을 하는 W트레킹 코스(코스가 W모양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가 제일 유명해서 다른 일정을 줄이고서라도 꼭 W트레킹을 할 것이라고 마음먹고, 토레스 델 파이네의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는 칠레의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출발한다.


  엘 칼라파테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는 버스로 6시간이 걸리고, 원래 아침 8시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전날 당연히 예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버스가 없어서... 11시 버스를 타야 했다. 

 

 

  후지민박에서 만난 대형이네 가족.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과 함께 3개월간 남미 여행을 왔다는데, 부모님의 결정도 대단하시고 대형이도 워낙 똘똘해서 후지민박에 있는동안 재밌게 같이 놀았다. 


 

  여긴 아르헨티나 - 칠레 국경. 칠레가 농산물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라 그런지 들어갈 때 짐 검사를 엄격하게 한다.


  칠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칠레라는 이름은 영어로 춥다는 의미의 칠리(Chili?)에서 왔다고 한다. 안데스 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해서 칠리라는 지명을 붙였는데, 누군가 단어를 잘못써서 칠리에서 칠레가 된 것이라고...칠레에 오기전에 칠레와인과 칠레청포도밖에 몰랐는데 생각보다 잘 사는 나라였다. 남미최초로 미국과 무역협정도 체결하고 FTA도 활발하게 하는 편이고 경제가 안정적이라고. 실제로 가 보니 생활수준은 우리나라보다 떨어져도 물가는 거의 별 차이가 없다.



  오후 5시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 론리플래닛에는 없던 버스터미널이 새로 완공되어 시내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고, 우리는 야간호스텔(Yaganhostel)이라는 곳으로 숙소를 정했다. 가이드북이랑 인터넷에 추천되어있는 곳인데 운 좋게도 자리가 비어서 바로 여기서 묵기로 함. 토레스 델 파이네 일정은 엘 칼라파테에서 만난 분당사는 덕희형이랑 같이 했는데, 원래는 혼자 텐트치고 밥해먹으려고 했지만 (산장은 이미 예약이 다 차고 없었고, 밥은 사먹으면 엄청 비싸기 때문에 해먹는게 낫다) 일정도 맞고 걷는 속도도 비슷하고 둘이 다니는게 더 나을 것 같아서 형이랑 둘이 다니기로 했다.



  오후 늦게 와서 다음날 아침에 출발할 준비를 하려니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캠핑준비가 하나도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칠레 돈 뽑고, 장비 빌리고, 먹을거 사고, 버스표 끊고 짐싸고 나니 11시가 다 되었다. 


  아래는 토레스 델 파이네 캠핑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팁. 


 * 장비: 야간호스텔이 대여가 저렴하고, 호스텔 중에서는 릴리호스텔이 대여로 유명하지만,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싼 곳이 있다. (이름을 까먹었는데.. 몇 평 안되는 작은 사무실같은 곳) 왜 그곳이 싸냐면, 하루 가격도 저렴한데다가 다른 곳은 대부분 3박4일이면 4일치를 받는데 거긴 3박으로 쳐서 3일치를 받기 때문!


- 상하의 바람막이+레인커버(하루 4000페소) : 가지고있던 외투가 얇아서 두꺼운 옷을 빌렸는데, 비도 안오고 날씨가 따뜻해서 많이 쓸일은 없었다. 하지만 강풍있는 지역이 있고 비바람이 몰아칠 수 있으니 꼭 필요


- 침낭(하루 2000?페소) : 침낭은 영하에도 견딜 수 있는 무조건 두꺼운 것으로. 우리는 직원 추천으로 제일 두꺼운 침낭(-10도용)을 빌렸는데, 첫날엔 무겁고 커서 후회하다가 첫날 텐트에서 밤을 보내고 난 다음엔 직원에게 속으로 100번은 감사인사를 한 것 같다. 괜히 돈아끼고 무게아끼려다가 밤새 잠못자고 추위에 떨 수도 있으니 조심.


- 텐트(하루 3000?페소) : 두명이서 2인용텐트 빌렸는데 2인용 중에서도 조금 큰 사이즈 빌리니 남자 두명이 딱 누울만한 사이즈였다. 큰 배낭은 텐트 밖에 놓으면 적당.


- 매트(하루 1000페소) : 인당 두개 빌리는 사람도 있던데 침낭이 두꺼워서 하나로도 버틸만 했다)


- 트레킹화 (하루 2000?페소) : 없으면 필수.


- 워킹스틱 (하루 2000페소) : 덕희형은 귀찮다고 안 썼지만, 난 배낭 매고 다닐때 유용하게 썼다. 쓰면 발은 아파도 허벅지 아픈건 확실히 덜하다.


- 가스, 버너, 코펠 (얼마였는지 기억안남) : 우리는 밥과 라면을 동시에 끓여야 했기 때문에 두 세트가 필요했지만 (코펠은 하나), 요리에 따라 정하면 될 것 같다. 가스는 작은 사이즈에 꽉 채워서 가면 한사람이 4일내내 아침저녁 해먹는데 문제 없음.


 * 음식

 우리는 아침에 스파게티, 점심에 샌드위치 + 햄 + 치즈 + 잼, 저녁으로 라면 + 밥 + 소세지 를 먹고 참치캔 10개를 사가서 틈틈이 넣어 먹었는데, 형이랑 나 둘 다 잘 먹고다녀야 하는 스타일이라 엄청 호화롭게 해먹은 편이다. (주변 외국인들이 우리가 스파게티랑 샌드위치 먹는 걸 부러워 할 정도) 유료캠핑장을 쓰면 실내에서 취사가 가능하니 자리만 잘 잡는다면 요리 해먹는데 큰 문제는 없음. 아침먹는 시간이 아까워 간단하게 때우고 가는 사람도 많던데, 우린 걷는 속도가 빠른 편이라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 천천히 10시~11시쯤 출발했다. 여기에 간식으로 초코바랑 초콜렛, 견과류도 챙겨갔고, 보드카나 위스키를 가져가면 캠핑장의 영웅이 될 수 있다지만 도저히 무거워서 가지고 갈 자신이 없었다. 물은 계곡물 떠먹어도 안전하니 1.5L 물통하나만 가져가도 충분.


 * 버스표

 왕복 8000원부터 15000원까지 있는데, 같은 코스임에도 도대체 왜 가격이 다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버스터미널가서 가격 비교해가면서 사면 된다.



  짐을 다 싸고 나서 앞으로 며칠동안 못 먹을 고기를 생각하며 먹은 마지막 만찬.



  다음날 아침. 아침 7시반 버스라 아침먹고 바로 출발한다. 아마 다 합쳐서 15kg이상은 되는 것 같은데...많이 먹으면서 날마다 1kg씩 줄여나갈 계획이라 돌아올 때는 가벼워져 있지 않을까? 들뜬 마음을 안고 토레스 델 파이네로 출발!


시작 전 호스텔 앞에서. 트레킹 비포/애프터를 보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코스 (이미지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코스 개요 

 코스는 말은 W지만 실제로는 한자로 뫼 산(山)자에 더 가깝다. 山의 세 꼭지점 부분에 경치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하나씩 있고, 아래 세 모서리? 부분에 캠프가 있어서 동->서, 서->동으로 캠핑장을 옮겨다니면서 매일 전망대 하나씩을 다니게 된다. (동->서로 가면 둘째날 전망대를 못 갈 수도) 산들이 2000~3000m 높이에 있기 때문에 직접 등산하진 못하고, 100~1000m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한다. 전망대 갈 때는 캠핑장에 짐을 놓고 가고, 캠핑장 사이만 짐을 갖고 이동.


 *동->서, 서->동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까 ??

  어느 코스로 완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해서 출발할 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은 어느 것이 낫다기보다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 서에서 동으로 갈 때의 장점


 1. 첫 날이 편하고, 나중에 어려운 코스를 갈 때 짐이 가볍다.

    첫 날 바로 걷는 것 없이 페리타고 호수 건너면 캠핑장이 있기 때문에, 첫 날 제일 무거운 짐을 지고 걸을 필요가 없어서 편하다. 그리고 날마다 짐이 가벼워지기 때문에 셋째날 4~5시간정도 오르막길을 걷게 될 때 가벼운 짐으로 갈 수 있다.


 2. 기승전결이 확실한 코스 

   난이도가 첫날은 쉽고, 둘째날은 중간, 셋째날이 제일 어렵고 마지막날은 편하게 내려오기만 하면 된다.  


-동에서 서로 갈 때의 장점


1. 첫 날 체력 좋을 때 가장 힘든 코스를 해결한다. 

  코스가 전반적으로 서쪽이 낮고 동쪽이 높은데, 동에서 서로 가게되면 첫날 일단 400m정도 올라가 놓고, 나머지 3일을 완만한 내리막길로 편하게 갈 수 있다. 첫 날이라 가장 힘이 넘칠 때 오르막길을 올라가는게 좋다는 의견.

  

2. 서에서 동으로 가면 미리 경치를 다 감상해 버려 재미가 없다.

  서->동 코스는 시작할 때 서쪽으로 가는 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너게 되는데, 이때 전체 경치를 보게되어서 트레킹하는 동안 힘이 빠질 수 있다.


이 외에 서->동이 순풍이 분다거나, 경치가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별로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점점 짐이 가벼워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서->동 코스를 선택했고, 만족하면서 3박4일을 보냈다.

 




다시 여행기 계속...


토레스 델 파이네에 도착! 저 멀리 눈덮인 고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편도 15,000페소 (우리나라 돈 3만원)이나 하는 페리를 타고 코스의 서쪽으로 향한다. 페리에서 내리니 동->서 코스로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냈다. 이제 한번 고생해봐라! 이런 의미일까? 



  이렇게 생긴 Paine Grande 산장 겸 캠핑장에 자리를 잡는다. 처음이라 아직 텐트치는 게 어색... 텐트를 친 다음 점심을 먹고 빙하가 있는 첫 전망대를 향해 간다. 왕복거리 22km.



이렇게 생긴 길을 따라 한시간 쯤 가니


저 멀리 빙하가 보인다. 이날은 비가 조금씩 와서 비를 맞으면서 갔는데 내 방수자켓은 물이랑 바람은 잘 막아주지만, 문제는 안에서 나가야하는 물이랑 열도 막아버려서 오래 입고있으면 땀이 찬다는 것 -.- 그래서 모자까지 쓰는건 포기하고 그냥 비 맞으면서 걸었다.



열심히 걷는 중.. 걷다가 가끔씩 주변을 둘러보면 반지의 제왕 세트장에 온 것 같은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



  빙하에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 권장시간은 세시간 반이었지만 맨몸으로 가니 두시간 반정도 걸린다. 사실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보고 나니 이런 빙하를 봐도 별 감흥이 없어서 그냥 사진만 몇 장 찍고 다시 돌아왔다. 


  여행을 많이 하면 생기는 문제점을 여기서 확실히 느꼈는데, 바로 여행지끼리 서로 비교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보지 않고 여기 왔다면 이 빙하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신기했을텐데, 이제는 시시해보인다. 이제 폭포를 보면 이과수가 생각나고, 빙하를 보면 페리토 모레노가 생각나고, 모스크를 보면 블루 모스크가 생각나고, 사막을 보면 나미비아 사막이 생각날 텐데... 전에 봤던 비슷한 풍경 때문에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의 매력을 알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다른 곳과 비교하면서 지금 있는 곳을 평가절하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행동이 아닐까? 물론 안봐도 되는 곳을 효과적으로 지나갈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여행의 매력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괜한 자부심이 생기게 되지는 않을지.. 앞으로 가는 곳에서는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저녁타임. 요리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햄과 참치를 넣고 끓인 너구리. 역시 트레킹 후에 먹는 라면은 최고! 거기다 한국도 아니고 칠레에서 먹는 라면이라니..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맛이었다. 나는 밥, 형은 라면으로 분업해서 요리를 했고, 우리랑 코스가 겹치는 한국인 네명 팀이 있어서 같이 나눠먹었다.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지고.. 아침 일정을 위해 다들 일찍 잠이 든다. 산과 호수 사이의 캠핑장이라 어떻게 찍어도 그림같은 풍경이 나온다.



 둘째날 아침.



 숙소에 있는 코스지도. W트레킹 말고도 산을 한바퀴 도는 O Circuit이라는 이름의 8~9일짜리 종주가 있는데, 이거 하면 밥은 어떻게 해먹는지 진짜 대단하다. 수분을 다 빼고 전투식량, 초코바, 육포, 건포도 이런것만 먹는다던데, 이런 코스는 나중에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극기훈련이 필요할 때에나 한번 도전해 봐야 할 것 같다.

  


 둘째날은 Italiano 캠핑장까지 7.5km, 캠핑장에서 전망대까지 왕복 11km, Italiano 캠핑장에서 오늘 숙소인 Los Cuernos 캠핑장까지 5.5km. 합 24km를 걷는데, 그 중 절반이 배날을 매고 걷는 코스라 첫날보단 쉽지 않다.


  

 아름다운 호수.



 숨막히는 산. 정말 .. 엘 찰텐에서 본 산들 이상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걷다가 산을 볼 때마다 아픈 느낌이 싹 가시고 이래서 여길 걷는구나!! 감탄만 나오게 된다. 


  걷다가 힘들면 쉬고, 배고프면 과자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볼일이 급하면 사람이 없을때 급하게 볼일을 보고, 이렇게 계속 길을 간다.


 

 이 강을 건너서 두 번째 전망대로 가는 시작점인 Italiano 캠핑장에 12시쯤 도착. 여기에 짐을 놓고 700m높이의 전망대로 올라간다. 짐을 그냥 관리사무소 옆에 놓아도 서로간의 매너인지, 아니면 들고 도망가기 무거워서인지 도난사고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 



 짐을 놓고 가니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서, 오르막길이 계속 되는데도 그렇게 피곤하진 않았다.


 놀라운 토레스 델 파이네의 봉우리들 사진 몇 장.







  풍경을 보는 느낌이 뭐랄까... 놀라우면서도, 그림같아서 현실감이 없기도 하고, 여기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서 결국에는 아무 생각도 안 했던 것처럼 머리가 하얘지는데, 이 대자연의 웅장함은 도저히 내 표현력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고 직접 가봐야지만 알게 될 것이다. 



 다시 Italiano 캠핑장에 도착. 여기서 잘 수도 있지만 셋째날을 위해 조금 더 걸어서 다음 캠핑장으로 가기로 한다. 


 

 전체 코스의 절반지점을 지나니 이제 우리 앞에 산보다는 호수가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두번째 Los Cuernos 캠핑장에 갈 때에는 내리막길임에도 발이 아파서 쉽지 않았다. 엘 찰텐 + 빙하 3일 트레킹하고 나서 하루 쉬고, 다시 이틀을 내리 걸었으니 이제 슬슬 발에 무리가 오는 것 같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발가락이 조금씩 쑤셔서 캠핑장까지 간신히 도착했다.

 


  이 캠핑장에서는 우리와 같은날 동쪽에서 출발한 팀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남미사랑에서 만났던 두 분과 찰텐을 같이 갔다왔던 형님, 거기에 우리랑 코스가 같은 한국인 네명에 혼자 오신 한국인 아저씨 한명까지 총 한국사람 10명이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아저씨께서 사주신 은혜로운 맥주, 그리고 동쪽에서 오신 두분이 가져온 와인을 마시며 ㅠㅠ 감동의 눈물을 흘려가며 라면을 먹었다. 동쪽 두분은 와인은 가져왔는데 밥이 없어서..(애주가이신듯) 우리 남는 밥을 좀 드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11시가 넘어 다들 다음날을 위해 텐트로 돌아갔다. 캠핑장에 늦게 와서 텐트 위치가 첫날보다는 별로..


 이틀동안 트레킹하면서 한국사람을 참 많이 만났다. 오늘 함께 저녁먹은 10명에다가 오늘 전망대에서 만난 해병대전우 아저씨 6명, 첫날 페리에서 내릴 때 만난 W트레킹을 마친 5명까지, 확실히 남미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구나 싶었다.


  


 

Posted by Joon'

11.20 아르헨티나 여행 8일차 in 엘 칼라파테

11.28 밤 칠레 산티아고 Forestal 호스텔에서 작성



  오늘의 일정은 말만 들어도 설레이는 빙하 트레킹이다. 파타고니아 지방은 남극, 알프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빙하지대이고, 엘 칼라파테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페리토 모레노 빙하라는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큰 빙하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빙하 위를 걷는 것이다! 아침일찍 출발해 저녁 7시쯤 돌아오는 이 투어의 가격은 무려 1680페소(한국돈 약 16만원). 입장료까지 합하면 18만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돈때문에 할까말까 고민했지만 이런 경험은 두번다시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손을 덜덜 떨면서 거금 16만원을 냈고, 돈이 아깝지 않은 결정이 되길 바랬다. 빅 아이스 'Big Ice' 라는 이름의 이 투어는 Hielo y adventura라는 회사에서 독점하고 있는데, 왜 독점을 하는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가격이 비싼 것 같다. 사실 투어의 질은 16만원짜리는 아닌데..(심지어 점심도 안 준다) 



  아침에 픽업버스를 타고 출발. 점심에 먹을 후지김밥 특제 주먹밥도 싸간다.


 

  좀 자다보니 저 멀리 빙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전망대에서 30분정도 둘러볼 시간을 주었는데, 전망대로 내려가자마자 정말 어마어마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와우. 우리나라에 입이 떡 벌어진다는 표현이 있는데(영어로도 Jaw-Dropping이라고 하더라), 정말 빙하를 보고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보면 빙하의 장엄한 모습에 압도되어 버린다.



  대부분의 빙하가 녹고있는 것과 달리, 안데스 산맥에서 흘러온 이 빙하는 매일 2미터씩 흘러내린다! 하루 2미터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매일매일 빙하의 모습이 변하는 셈이다. 실제로 빙하 앞에 서면 주기적으로 빙하에 균열이 생기며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빙하조각이 떨어져 내리는 것도 운 좋으면 볼 수 있다. 나도 직접 봤지만 카메라를 꺼내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감상을 마치고 빙하에 오르기 위해 이동한다. 코스는 한시간정도 빙하 옆의 계곡을 타고 올라간 뒤 빙하장비를 착용하고 한시간 반정도 빙하 안쪽으로 이동,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것이다. 왕복 다섯시간에 실제 빙하에 있는 시간은 세시간정도. 빅아이스 말고 미니트레킹도 있지만, 하는 걸 보니 실제 빙하에 있는 시간은 30분도 안 되는것 같아 보였다.




 계곡을 타고 오르는 동안에도 바로 옆에 빙하가 있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날씨가 구름이 많아 오히려 빙하를 보는 데 더 도움이 되었다.




 신발에 아이젠을 차고 빙하를 걷기 시작. 일반 아이젠과 달리 뾰족한 부분이 훨씬 깊게 되어있다. 걷는 느낌은 눈이 얼어버린 곳을 걷는 것 같은데, 좀 이상해도 묘하게 기분이 좋다.


빙하 사진 몇 장.






  빙하를 감상하면서 걸어가는데 엘 찰텐 트레킹때문에 발이 아픈건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 걷다보면 이렇게 크레바스에 물이 고인 것도 감상할 수 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에 갑자기 빠지는 것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란다. 빙하 틈이 파랗게 보이는 건 미네랄 때문이 아니라 빛의 파장 중 빨간 빛은 얼음을 통과하고 파란빛들이 얼음에 반사되어서 그런 것이라고. 



저기 보이는 물은 안데스 빙하 청정수이기 때문에 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완전 시원하고 맛있음



 빙하 위를 걷고 있으니 마치 설국열차나 남극탐험 다큐멘터리를 찍는 느낌. 매일 빙하가 변하기 떄문에 가이드도 정해진 루트로 가지 않고 큰 방향만 잡아놓고 그때그때 빙하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간다. 점심도 그냥 끌리는 곳에서. 우리 팀은 다들 잘 걸어서 다른 팀에 비해 멀리까지 와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총 인원을 여러 소그룹으로 나누어서 다닌다) 나랑 한국인 일행 형 둘이 주먹밥을 먹는데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이렇게 멀리서 보면 남극탐험대같다. 멀리서 사람을 볼 때마다 사람이 자연에 비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낀다.



 풍경 이외에도 빙하에 생긴 균열, 물이 고이는 이유, 빙하가 녹는 속도, 빙하 표면의 구멍등에 대해 가이드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트레킹을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빙하 사진 한 장.



 투어를 마치면 열쇠고리와 브라우니, 그리고 그 유명한 빙하얼음을 띄운 위스키를 준다. 설마 정말 빙하얼음을 쓸까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뜰채로 빙하얼음을 뜨는 직원을 보고 ㅋㅋㅋ 진짜 빙하라는 걸 알았다. 100% 수작업으로 얼음을 뜰 줄이야...




  빙하의 여운을 가지고 숙소에 7시쯤 돌아왔다.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날이라 빅 아이스 같이한 세명이서 돈을 모아 다른 숙소 사람들이랑 고기파티를 하기로 했다. 고기의 천국 아르헨티나 답게 소고기 안심이 1킬로에 만원도 안해서 양고기 + 소고기 + 와인까지 푸짐하게 사서 배터지게 먹었는데도 돈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고기를 정육점에서 사서 후라이팬에 구웠을 뿐인데 왜 이렇게 고기가 입에서 녹는건지.. 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풀 뜯으면서 자란 행복한 고기라서 그런가보다.


 

  그렇게 아르헨티나에서의 마지막 날은 끝이 났다. 빙하 위를 걸어보고, 바람을 느끼고, 빙하물을 마시고, 빙하를 만져보기까지, 정말 오감을 만족시킨 빙하트레킹이었다. 이정도면 인생에서 꼭 해봐야 할 것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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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아르헨티나 여행 7일차 in 엘 찰텐

11.28 저녁 칠레 산티아고 Forestal 호스텔에서 작성


  아침에 일어나니 발이 욱신욱신 쑤시는걸 보니 어제 많이 걷긴 걸었나보다. 그나마 다리가 안 아픈게 다행. 9시쯤 빵과 우유로 늦은 아침을 때웠는데, 이날은 정말 돈이 없어서 간신히 밥을 해결했다. 이미 엘 찰텐에 도착했을때 수중에 2만원밖에 없었고, 그 중 절반은 어제 점심/저녁과 우유, 휴지, 물을 사는데 써버려서 여행 시작이후 처음으로 만원도 안 남은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ㅠㅠ 마을에 하나 있는 ATM은 이미 돈이 다 떨어진 듯 돈을 뱉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마트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아침에 먹고 어제 사고남은 사과와 과자, 빵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5000원 정도 남은 걸로 저녁을 먹는게 오늘의 계획. 저녁버스를 타고 엘 칼라파테까지 가면 해결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만 버텨보기로 했다.

 

  오늘도 역시 어제랑 비슷하게 하루종일 걷는 일정. 저녁 6시반 버스를 타기 전에만 마을에만 돌아오면 된다. 


  인구 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라 보면 볼수록 아담하고 정이 많이 간다.



  오늘 갈 곳은 라구나 토레(Laguna Torre), 토레 호수라는 곳이다. 어제 간 피츠로이가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면 여긴 토레 산은 두번째 정도? 산에 올라가는 건 아니고 산이 잘 보이는 호수에 가는 거라 어제보다도 쉬운 코스다. 권장시간은 왕복 8시간이지만 어제 속도를 생각하면 6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마을의 전경.



  어제랑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풍경 속으로 걸어간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걸어가는데 방해꾼이 있었으니..바로 파리. 파리가 얼마나 많은지 걸어가면서 박수를 치면 손에서 파리가 죽어나가는 걸 볼 수 있는 정도 (실제 시험해 봄)이다 -.- 같이 찰텐 온 형님 말로는 뉴질랜드도 그렇고 노르웨이도 비슷하다고 하니, 파리 많은 건 이런 지역의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파리만 없었다면 아름다운 숲을 천천히 느끼면서 갔겠지만, 엄청난 밀도의 파리때문에 (사람을 피해가지도 않고 그냥 몸에 앉는다) 빨리 빠져나가야만 했다.

  


  파리숲을 빠져나와 강을 지나서 드디어 목적지인 호수에 도착했다. 실제 걸어간 건 세 시간이나 되지만 어제보다 풍경이 별로라 사진을 많이 찍진 않고 계속 걷기에만 집중했다. 바람도 적당하고 날씨도 선선해서 걷기에는 딱 좋은 날씨.



  확실히 어제의 호수보다는 아쉬운 느낌이다. 여기서 한시간을 더 가면 저 멀리 보이는 빙하에 가까이 갈 수 있었지만, 어차피 내일 빙하에 갈거니까 굳이 가지 않고 돌아왔다.



하산길. 알프스랑 뉴질랜드 남섬, 노르웨이도 이런 비슷한 느낌일까?




 시간이 남아 마을 남쪽의 왕복 두시간거리에 있는 전망대를 다녀오기로 했다. 실제로 한시간 반도 안걸림. 마을 입구에 있는 엘 찰텐 환영 표지. 피츠로이 모양의 간판 뒤로 진짜 피츠로이가 보인다. 저렇게 맑게 피츠로이가 보이다니..피츠로이는 어제가 아니라 오늘 올라가야 했던 것인데ㅜㅜ..  오늘 올라간 사람은 정말 운이 좋은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피츠로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망대에서 큰 호수가 보인다길래 기대했지만 큰 호수가 '저 멀리' 보이는 전망대였다.. 



  원래 피츠로이를 보기 위한 전망대는 아니었지만, 마을 근처의 산 전체가 이렇게 한 눈에 들어와서 좋았다. 피츠로이 머리 위에는 저렇게 하루종일 모자같은 구름이 걸려 있었다.



저녁으로 먹은 시금치와 호박이 들어간 이상한 파이.


  돌아오는 버스에선 정신없이 잤고, 열시가 다 되어서 도착한 엘 칼라파테에서는 시내의 모든 ATM이 내 카드를 거부했다. 울상이 되어 후지민박으로 돌아왔는데 다행히 매니저님이 한국돈을 보내주면 페소로 바꿔준다고 하셔서 11만원을 페소로 바꿀 수 있었고, 이정도면 내일 국립공원 입장료, 칠레넘어가는 버스, 숙박료 등을 해결하기에 충분했다. 후지민박 정진우 매니저님 감사합니다(꾸벅). 게다가 우연히 남미사랑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서 맘편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일의 빙하트레킹을 위해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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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18 아르헨티나 여행 5,6일차 in 엘 칼라파테/엘 찰텐

11.26 밤 칠레 푼타 아레나스 공항에서 작성

 

남미에 온 후에 계속 쫓기듯이 남쪽으로 내려와 결국 세상의 끝이라는 파타고니아 지방에 도착했다. 사실은 쫓겨왔다기 보다는 빨리 오고 싶어서 발걸음을 재촉한게 더 맞다. 아프리카의 남쪽 끝이 희망봉이라고는 하지만 위도상 30도가 조금 넘는 곳이라 극지방에 있는 느낌이 안 드는데 비해 이곳은 설산과 빙하가 있다는 것만으로 내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곳 중 하나가 되었고,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부, 남위 50도가 넘는 파타고니아 지방에서 보낸 10일은 정말 기대 이상으로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아침 6에 출발한 비행기는 세시간 반정도 걸려 칼라파테 공항에 도착했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파일럿이 서비스로 칼라파테 주변을 돌며 스페인어로 어쩌구저쩌구 설명을 해 줬는데, 이해는 하나도 못했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부터 이미 압도되기 시작했다. 설명이 끝나자 큰 박수와 터져나왔고 그렇게 비행기는 공항에 내렸다.



  푸른 하늘, 호수, , 초원, 그리고 극지방에 왔음을 느끼게 해 주는 쌀쌀한 날씨. 첫 인상부터 맘에 든다.

 

이 지역은 4~10월이 한겨울이라 영하의 날씨에 해 뜨는 시간도 짧아 여행객이 거의 없고, 11월부터 3월까지는 칠레/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여행객이 찾아온다. 12월과 1월은 극성수기라 예약을 꼭 해야한다던데 다행히 11월 중순은 본격적인 성수기 이전이라 전반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숙소는 후지민박으로 정했다. 일본인 사장님과 한국인 사모님이 운영하는 이 곳은 시내에서 위치는 약간 떨어져 있지만 (그래봤자 걸어서 10분 내외) 분위기도 좋고 아침밥이 맛있다고 해서 주저없이 선택했다.



숙소에 있는 엘 칼라파테 마을의 지도.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마을로 파타고니아 지방으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는 12시쯤 도착했으니 좀 쉬다가 마을도 구경하고 빙하 박물관도 들어가보려고 했지만, 어제 공항에서 밤새 안자고 비정상회담을 보는 바람에 잠 부족으로 12부터 5까지 푹 자고 말았다.. 간신히 일어나서 정신을 좀 차리고 ATM에서 돈을 좀 찾으려고 밖으로 나갔다. 투어신청을 하느라 예상보다 돈을 많이 쓴 것이 문제였다ㅜㅜ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걸어보고 엘 찰텐을 트레킹을 하러 12일로 갔다오는 것이 여기 온 목적이었는데, 빙하투어와 엘 찰텐 12일을 신청하고 나니 돈이 기껏해야 200페소(2만원)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다. 빙하투어가 무려 16만원..그것도 예약이 이틀동안 꽉 차서 엘 찰텐을 다녀와서 3일 뒤에 하기로 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렇게 비싼지 나중에 꼭 제대로 즐겨야지..

 

 어쨌든 눈물을 머금고 공식환율로 ATM에 돈을 뽑으러 갔지만 카드를 안 가져오는 바람에 -.- 어이없게도 돈을 못 뽑고, 대신 남미사랑에서 만난 형님에게 밥을 얻어먹었다.(형님이라고 하지만 15살이나 차이남). 이 형님과는 엘 찰텐과 빙하트레킹, 칠레 일정까지 비슷해서 계속 만나게 된다.



Primera와 샌드위치 Primera를 시켰다. Primera가 뭔가 했더니 엄청나게 큰 돈까스 같은 것이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생각보다 엄청 큰 음식이 나와버려서 (파타고니아의 스케일이란..) 둘이 다 먹으려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고기만 다 빼먹었다. ㅜㅜ

 

숙소에 돌아와보니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고 있어서 같이 한잔 했는데, 우리나라와 다르게 와인이 싸고 맛있어서 사 먹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서로 얘기를 나누는 중에 사장님이 돌아오시고 (사장님과 사모님은 시내에서 스시 바를 하신다) 사장님은 기분이 좋으신지 밤새 기타를 연주하신다. 열 시나 되어서야 해가 지고, 밖의 바람은 집이 날라갈 것처럼 차갑게 불지만 안은 따뜻하기만 하다. 각자의 여행얘기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누다가 보니 두 시가 넘어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12일 일정으로 엘 찰텐(El Chalten)으로 떠난다. 엘 칼라파테가 파타고니아 지역의 관문이라면 엘 찰텐은 엘 칼라파테 북쪽으로 세시간 거리에 있는 산과 호수로 둘러쌓인 이른바 아르헨티나 트레킹의 수도이다. 트레킹의 수도답게 설산과 빙하, 호수가 만들어내는 숨막히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많고 나는 그 중 유명한 두 코스를 다녀오기로 했다.  



멀리 보이는 엘 찰텐의 산들.



마을에 도착하자 엘 찰텐의 가장 높은 산이자(3000m가 조금 넘는다) 마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피츠로이 산(Cerro Fitz Roy)이 보인다. 날씨가 안 좋은 날이 대부분이고 하루에도 날씨가 몇 번씩 바뀌어서 일기예보가 의미 없다는데, 오늘은 그래도 맑은 날에 온 것 같다.



  호스텔에 짐을 놓고 트레킹을 시작하러 나왔다. 피츠로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가는데 왕복 20km에 예상 9시간 정도라 중간에 점심과 저녁을 해결해야 한다. 점심은 후지민박에서 주문한 특제주먹밥을 먹기로 하고 저녁은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해서 챙겨갔다. 뭔지 모르고 시켰는데 돈까스를 빵 사이에 넣고 아무런 야채와 소스도 넣지 않은 왜 이렇게 먹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샌드위치였다.

 


트레킹 코스 입구에서. 이때까지는 상태가 멀쩡했지



친절하게도 이렇게 코스에 대한 안내가 나와있다.



시작부터 멋진 경치를 감상.

 


  코스가 힘들 줄 알았는데 초반 30분 정도만 올라가고 두 시간 정도 평지를 걷기만 하는 코스라 별로 힘들진 않았다. 주변 풍경에 취해 한 시간쯤 걷고 나니 1/3 지점인 피츠로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웅장한 피츠로이의 전경. 이 풍경을 보려고 여기서 며칠씩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던데 한번에 봤으니 운이 좋았다.



사진 몇 장 찍고 피츠로이를 좀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고고







이렇게 생긴 숲과



설산이 보이는 벌판을 지나면



  2/3 지점인 Poincenot 캠핑장에 도착한다. 한 시간쯤 걸었나? 걷다보면 덥고, 안 걸으면 더워서 반팔, 니트, 바람막이를 가져가서 계속 바꿔가면서 입었던 것 같다. 반팔입다가, 바람불면 바람막이 입다가, 너무 추우면 니트도 입고. 이 곳은 캠핑장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숲 속에 표지판 하나와 푸세식 화장실이 전부.. 화장실 옆에는 친절하게도 삽 하나와 대변을 볼 때 사용하시오 라는 팻말이 있어서 아프리카가 생각났다.



  Poincenot까지는 왔지만, 여기서는 한 시간정도 급경사를 따라 올라가야 피츠로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돌계단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뒤로는 이런 풍경이 보이고,

 


슬슬 눈이 쌓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이 녹아서 땅이 질퍽질퍽.





언제쯤 다 올라가나 싶을 때 피츠로이가 살짝 보이기 시작하고,



  숨을 헥헥거릴 때쯤 피츠로이 아래의 아름다운 호수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빙하가 녹아 생긴 이 호수는 마치 피츠로이 산의 속살처럼 가까이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끔 빙하가 부서지면서 내는 천둥치는 것같은 소리까지 말 그대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기쁜 마음에 사진을 찍고,



피츠로이를 기다린다. 아래 전망대에서 그렇게 잘 보이던 피츠로이는 여기 오니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사진을 보면 구름 뒤에 큰 봉우리가 숨어있다) 여기서 30분도 넘게 기다렸지만 구름이 계속 걷힐 듯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걷히지 않았다. 구름만 없으면 정말 장관을 볼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바람은 얼마나 세게 불던지, 태어나서 그렇게 센 바람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며칠 뒤 칠레에서 더 심한 바람을 만나게 된다) 마치 빨리 내려가라는 것처럼 바람이 세차게 때려대서, 사람들은 다들 바위 뒤에 숨어서 음식을 먹는다.



  바람이 많이 불어 구름도 금방 걷힐 줄 알았지만, 봉우리가 높아서 그런지 구름이 끊이지 않고 계속 생긴다.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듯 구름이 산에서 피어오르는 모습을 신기하게 관찰했다. 

 


 피츠로이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 수줍은 피츠로이는 끝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에 들른 호수.

 


여기서 저녁을 먹고 8시쯤 하산했지만, 이 빵으로는 역시 부족해서 찰텐에 같이 간 형님에게 고맙게도 피자랑 맥주를 얻어먹었다.

 

  이렇게 엘 찰텐에서의 첫 날 트레킹은 끝. 예상시간보다 한시간 반정도 빨리 도착했다. 트레킹 첫날의 소감은 뭐랄까... 잡생각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등산처럼 한발 한발 집중해서 걷다보면 어느새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가 되고, 그냥 걷는거다.. 물론 등산보다는 훨씬 편해서 가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기도 했다. 그리고 주변 풍경들은 정말 '그림같다'는 말이 무엇인지 와닿게 해 주었다. 실제로 보고 있으니 그림을 보고 있는 것처럼 저 산이 정말 저기 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게 느껴진다. 아무리 사진이나 풍경을 많이 보아도 내가 직접 그 곳을 걸어보고 가까이 가 보아야, 그때서야 그 곳을 내가 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구나. 라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 아니라 백번 보는 게 한번 걸어보는 것만 못하다. 이것이 트레킹의 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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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아르헨티나 여행 4일차 in 부에노스 아이레스

11.26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 Josmar 호스텔에서 작성


  케이프타운, 리우, 그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우연히 도시에 올 때마다 주말에 맞춰서 오게 되는데, 확실히 도시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선 주말에 와야하는 것 같다. 일요일인 오늘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날이어서 이제는 왜 사람들이 여기서 장기체류를 많이 하는지 알 것 같다.


 오늘 코스는 라 보까(La Boca), 산 텔모(San Telmo), 리골레타(Ricoleta), 그리고 팔레르모(Palermo)까지 보는 일정이다. 어제 시내 중심부를 돌았다면 오늘은 교외까진 아니고 시 외곽을 구경하는 코스였는데, 결국 마지막에 팔레르모는 제대로 못 보고 공항으로 가야했다. 어제만 해도 부에노스에 오래 있을 것 같진 않아서 17일 아침비행기를 예약했는데, 오늘 다녀보니 적어도 부에노스에서 적어도 세 밤은 자야지 제대로 구경할 수 있구나 싶어서 떠날 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먼저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라 보까 지역의 핵심인 까미니또Caminito로 향한다.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살던 이 곳은 예술가들이 찾아오면서 아름다운 거리가 되었고, 아르헨티나의 명문 축구팀인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의 홈 구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반경 200m정도 되는 까미니또 부근에 모든 레스토랑과 기념품점이 모여있고, 밖으로 벗어나면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에 멀리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리 전체가 탱고(발음은 거의 땅고에 가깝다) 테마파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탱고 벽화, 탱고 기념품, 탱고 댄서와 사진찍기, 레스토랑의 탱고 공연을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예술가. 탱고와 반도네온은 뗄 수 없는 조합이라고. 



  원래는 한시간 정도만 보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컬러풀한 건물들과 활기찬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산타 테레사도 그렇고 컬러풀한 건물들에 꽂히는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시켜놓고 탱고 쇼를 감상하며 주변 구경을 하기로 한다. 어제 탱고 쇼를 못 봤으니 꿩 대신 닭으로..



 탱고 댄서들과 사진 한 장. 라 보까에서의 탱고 쇼는 관광객용이라 참맛을 느낄 수 없다고는 하지만, 오늘 저녁엔 탱고 쇼를 못 볼수도 있어서 일단 여기서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캐릭터.


 

 아무렇게나 카메라를 갖다대도 예쁜 사진이 나온다.


 

 보카 주니어스 축구장에 갔으나 문을 닫은 것 같았다. 축구경기를 보고 싶었지만 이미 경기가 없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26일에 라이벌 매치가 있다고 하는데 잘못 갔다가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수도 있다고 한다...여기 훌리건들도 브라질 못지않은 듯.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들. 마라도나와 디 스테파노(아마도)



 라 보까의 매력에 취해 기분좋은 채로 버스를 타고 산 텔모 지역으로 왔다. 이 곳은 일요일마다 큰 시장이 들어서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하루종일 다 둘러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하지만 쇼핑에는 관심이 1%도 없고 유일하게 모으는 열쇠고리는 이미 라 보까에서 샀기 때문에, 길거리음식만 찾아다니면서 산 텔모를 가로질렀다.


츄러스


아레파라는 과자. 튀긴 치즈스틱 맛인데, 가격에 비해 맛은 별로..

엠빠냐다.


소시지


 산 텔모에는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계속 먹으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5월광장 근처의 중심도로에 도착해 있었는데, 여기선 레바논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여기 오고 나서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이 곳은 문화가 있는 도시였던 것이다. 많은 공연장에서 수시로 공연이 열리고 주말이면 사람들이 공원에 나와 축제를 즐기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보니, 괜히 여기가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내가 이틀간 본 크고작은 행사만 해도 게이 퍼레이드, 박물관의 날(어제 박물관들이 단체로 무료 야간개장을 했다), 레바논 문화축제, 좀비 런(시민들이 좀비분장을 하고 달리는 행사, 오늘 했지만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갔다), 교회에서 하는 콘서트 다섯 개나 되고, 돈 내고 보는 공연들까지 포함하면 여기 살면서 매일매일 공연과 축제만 봐도 재밌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언제 이런 문화를 발전시켰을까. 잘 놀기로 소문난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라 그런 걸까? 게다가 밤 늦게까지 운영하는 레스토랑, 밤새 운영하는 클럽들과 우리나라처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24시 편의점까지. 돈 쓰면서 놀기는 좋은 곳인게 분명하다.



  저녁의 탱고 쇼 대신 숙소에서 추천한 Fuerza Bruta 라는 공연을 남미사랑 일행들과 같이 보러가기로 하고, 짐을 맡겨놓기 위해 공항에 먼저 다녀왔다. 숙소는 시내에 있고 공연장은 공항 근처라, 공항에 짐을 놓고 공연을 보러 오는게 더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이었다. 공연장이 있는 리골레타는 공원이 많은 부촌 같아보였다.  



이곳에서도 역시 일요일을 맞아 성당에서 무료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고,



잔디밭에서는 사람들이 길거리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난 유명한 아이스크림집인 Freddo라는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잔디밭에 혼자 앉아서 여유롭게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면서 공연시간을 기다렸다.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젤라또랑 비슷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Dulce De Leche 맛도 시켜봤는데, 우리나라에서 먹는 카라멜 맛이랑 비슷하면서 좀 진한게 묘하다. 



 리골레타에 있는 묘지. 원래 계획은 여기를 구경하면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문을 일찍 닫는 바람에 구경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 론리 플래닛에 Top Choice로 꼽힐 만큼 묘지답지 않게 아름다운(?) 무덤들이 모인 곳이라고 한다. 바깥에서 보기에도 공동묘지라기보단 공원이나 중세시대의 골목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공연은 8시인데 7시에 아까 콘서트를 했던 교회에서 미사가 있어서 미사를 드렸다. 신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뭔가 교황님이 나온 도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는게 뜻깊은 경험이 될 것 같았고, 한국과 미사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했다. 스페인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미사 순서는 똑같은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은 아무도 면사포를 쓰지 않는다는 것, 성가대랑 피아노가 없고 기타반주로 노래한다는 것, 사람들이 성가를 책을 보면서 부르지 않는다는 것(성가책도 없다. 아마 매 주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닐까..), 그리고 평화를 비는 인사를 할때 우리나라처럼 합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식으로 볼을 맞대고 뽀뽀를 한다는 것이었다. (옆의 아주머니랑 하는데 진짜 당황스러웠다)



 괜히 뿌듯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고 나와 바로 옆의 공연장으로 향한다. 사실 Fuerza Bruta라는 공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그냥 앉아서 보는 서커스 같은 것인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는 180도 다른 엄청난 공연이었다. 사람들을 네모난 빈 공간에 몰아넣은 뒤 공연이 시작했고,


북소리가 울리다가

갑자기 사람이 날아다니고, 물을 뿌리고, 거대한 런닝머신이 등장하고.. 한시간 반동안 진짜 정신없이 공연에 압도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 공연과는 완전히 다른, 전혀 새롭고 놀라운 공연이었다. 자세한 공연정보는 검색해보시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간다면 꼭 보길 강력 추천한다. 한국에서는 10만원도 넘는 가격에 공연했다던데, 여긴 전용 공연장이라 한국돈으로 13000원이면 볼 수 있다.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던 공연.



나올 때 온몸이 다 젖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ㅋㅋㅋ



 일행을 보내고 마지막 코스로 고급 레스토랑들이 몰려있다는 부촌 팔레르모로 향했지만, 일요일 저녁이라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아 썰렁하고 원하는 거리풍경은 볼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안고 공항으로 돌아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꼭 다시 올 것이다. Adios!

Posted by Joon'

11.14&15 아르헨티나 여행 2,3일차 in 부에노스 아이레스

11.26 푸에르토 나탈레스 Josmar 호스텔에서 작성

 

아르헨티나쪽 이과수 마을인 푸에르토 이과수는 여러 면에서 빅토리아 폭포 마을과 닮았다. 관광을 위해 생겨난 여행자 마을이라 여행자 편의시설이 한 곳에 몰려있고, 조용한 분위기에 안정된 치안까지. 그리고 게이트가 2개 밖에 없는 조그만 공항인 것도 마찬가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는 버스로 19시간이지만 비행기로는 두시간 반. 장거리 버스타기 시간도 아깝고 돈 차이도 얼마 안 나서 비행기를 선택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 스페인어로 좋은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위치상 서울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제일 가까운 도시이다. (서울 정반대편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동쪽 해상) 우리나라와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 정말 지구 절반을 돌아온 거구나 하고 괜히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씩 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배낭 하나에 의지해 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여행을 한다는 사실이 실감나곤 하는데, 오늘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그 사실이 확 와닿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내선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호스텔 남미사랑으로 간다. 남미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정보도 얻고 동행도 구하고 한식도 먹고 싶어서 주저없이 남미사랑을 선택했다. 버스비가 현금 6페소, 카드 3.5페소 밖에 안 하니 (한국돈으론 600, 350) 물가가 싸진 걸 체감할 수 있다.



오후에 도착해서인지 남미사랑에는 다들 나가고 남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체크인을 하고 빨래를 맡긴 뒤 주변 산책을 나섰다.



엠빠냐다(Empanada)라는 음식. 우리나라 만두랑 놀랍게도 똑같은 모양이라 먹을 때마다 신기헀다. 단지 만두피를 두껍게 만들어서 씹는 느낌이 빵 같다는 게 차이.



가이드북에 의하면 아르헨티나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강국이고 소를 잡아서 가죽만 챙기고 고기는 버렸다는 시절(아마 1940~50년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유럽보다 더 유럽 같은 도시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도시는 유럽 느낌이 많이 난다. 케이프타운이 영국을 닮았다면 이곳은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닮은 것일까? 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반 세기 전에는 강대국이었다고 하지만, 여러 경제위기와 군부정권을 겪으면서 지금의 아르헨티나 경제는 한마디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에 외화부족까지. 달러가 풍족한 여행자들에게는 싼 가격으로 여행할 수 있어 천국 같은 곳이지만 현지인들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지 짐작할 수가 없다.



  원래는 시내 중심부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30분 정도 신나게 걷고 나서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아서.. 마테 한잔 마시고 다시 원래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아르헨티나에 마테차가 유명하다고 해서 현지인들처럼 마테전용 찻잔에 찻잎과 뜨거운 물 부어서 마셔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파는 데가 거의 없고 다 티백에 타서 준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대성당과


 

그 옆에 보이는 대통령궁. 내일 아침에 보러 올 곳들이다.


 

8시쯤 남미사랑에 들어가 아사도 파티를 시작했다. 아사도Asado라고 해서 아르헨티나식으로 고기를 구워서 맘껏 먹는 자리였는데, 어떻게 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맛있었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소가 사는 이곳은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에서 메뉴판과 가이드북을 보니 아르헨티나의 음식이 다양하지는 않지만(피자, 소고기, 파스타, 엠빠냐다 정도..), 고기가 맛있기 때문에 고기만 계속 먹어도 안 질릴 것 같다.

 

오랜만에 한국사람들이 가득한 떠들썩한 술파티에 가니 처음엔 어색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밌게 어울려 놀았다. 다들 나이도, 출신 지역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여행자라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라고 매번 느끼게 된다. 오랜만에 술과 고기를 잔뜩 먹으니 잠이 오지 않아 숙소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가 늦게 잠들었다.

 

 

 

 

 

 

다음날은 아침에 빨래를 찾고 시내를 쭉 둘러보기 위해 구경을 나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계획도시인지 도로들이 다 바둑판 모양으로 쭉쭉 뻗어있다.

 

사실 어제와 오늘은 왠지 모르게 하루종일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괜히 달러가 부족해 돈이 떨어질 것만 같았고(돈이 부족해 ATM에서 뽑으면 암환율이 아닌 공식환율로 뽑히기 때문에 돈을 1.5배 더 내야하는 ATM을 쓰는 게 너무 아까웠다), 앞으로의 불확실한 일정 때문에 빨리 이동하지 않으면 보고 싶었던 것을 다 못 볼 것 같았다. 게다가 어제 남미사랑에 도착하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할 수 있는 것들 (공연, 식당, 박물관 등등)이 잔뜩 적혀있었는데, 가이드북에 공항에서 받은 정보책자에 이 정보까지 더해지니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보여서 더 혼란스러웠다.

 

불안한 나머지 왠지 숙소에 나온 정보들을 다 섭렵해야 할 것 같아 호스텔 매니저 형한테 그 파일을 달라고까지 했다가 한 소리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왜 남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하려고 하냐. 너만의 루트대로 여행하면 되잖아 그 형은 파일 주기가 귀찮아서 농담삼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마 빡빡한 스케줄에 좀 지쳐있었던 것 같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해야 할 60가지가 있더라도 60개를 다 채워야만 행복한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닌데, 내가 하고싶은 대로 여행하면서 나만의 루트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것을 따라가려고 했던 것이다. 관광할 것 60개가 있으면 60개를 다 체크해야 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을 여행하면서 조금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가 발길이 닿는 데로 한번 다녀보기로 했다

 

  우선 환전을 하고, 항공사 사무실에 들러 엘 칼라파테로 가는 표를 샀다. 암환전 덕분에 항공사 사무실에 직접 가서 현금으로 표를 사는 것이 인터넷 결제보다 20%정도 싸다. 환전이야 시내 중심가를 걷다보면 깜비오~를 외치는 암환전상이 많으니 걱정할 필요 없었고 표도 무난하게 샀다. 


 


  먼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5월 광장과 그 바로 앞에 있는 대통령 궁부터 방문했다. 주말과 휴일에는 무료 가이드 투어가 있어서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었다.



 입구. 입구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초상화가 여기저기 걸려있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내가 아르헨티나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걸 다시한번 실감했다.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중 하나인 에바 페론. 유명한 배우였다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어 여성운동으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전에 한국에서 에비타라는 뮤지컬을 봐서 알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 들어가면 제일 알아보고 싶은 사람 중 하나.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저 사진.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쿠바사람인 줄 알았는데.. 역시 한국돌아가면 알아보고 싶은 사람이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도 꼭 봐야지



 내부에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져 있다.


 

 투어 시작. 다양한 색채가 마음에 든다.



 여성들의 방.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여성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곳으로 회의실로 쓰이는듯 하다.



 유명인들의 사진이 걸린 복도. 마라도나부터 메시까지 있다.



 

 에바 페론의 집무실이었다던 이곳. 


 대통령 집무실을 끝으로 투어를 마쳤다. 아는 것이 많이 없으니 감흥이 크진 않았지만, 아르헨티나에 왔으니 의례적으로 해야 할 관광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아깝진 않았다. 12시가 되니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11월의 아르헨티나는 날마다 점점 더워지는 중.



 

 토요일이라 주말을 맞아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많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매력 중 하나는 공원이 많다는 것.

 

 

 바로 옆의 대성당을 구경. 실제로 미사를 하는 성당이었는데, 미사 시간이 안 맞아서 나중에는 다른 곳에서 미사를 드려야 했다. 내심 이 곳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흔적을 찾길 기대했지만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이 곳에는 산 마르틴 장군의 유해가 묻혀있다. 산 마르틴 장군은 칠레, 페루(다른 나라도 독립시켰는지는 잘 기억 안남)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전설적인 장군으로, 아르헨티나에서 국부와 맞먹는 수준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파는 마테잔의 모습. 작은 호리병처럼 생겼다.


 대성당부터 오벨리스크를 지나 정처없이 계속 길을 걷다가, 너무 더워서 점심도 먹을 겸 카페로 들어왔다. 원래 론리플래닛에 있는 카페를 가려고 했지만 지나가다보니 괜찮은 곳이 있어서 그냥 들어갔다. 가이드북에 없어도 내 맘에 들면 그냥 가면 되지 싶었다.




  주문한 지 40분이 지나서야 나온 나폴리타나 피자는 그냥... 보이는 그대로의 피자 맛이었다. 늦은 김에 현지인처럼 천천히 여유를 즐겨보자고 생각하면서 여유롭게 먹고 커피까지 시켰다.


 

 아메리카노가 없고, 블랙커피를 시키니 에스프레소에 탄산수를 준다.



  길거리에 있는 탱고 스텝 가이드. 나중에 따라해봐야지.


  원래는 리골레타에 있는 유명한 공동묘지까지 가려고 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왠지 문을 닫았을 것 같아서 근처에 있는 유명한 서점으로 갔다. (이름은 까먹음) 원래 극장이었던 곳을 서점으로 개조해서 웅장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걷기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계획은 저녁에 하는 550페소짜리 저녁+레슨+공연이 포함된 탱고 쇼를 보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7시에 오기로 한 차가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아쉽게도 포기하고 내일보기로 했다. 픽업 차가 게을러서 안 온건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숙소 바로 앞 대로에서 대규모의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있어서 교통통제를 하는 바람에 차가 못 들어오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가까이 가서 보니 게이 퍼레이드! 게이 퍼레이드를 내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길거리는 이미 사람들의 대화소리와 음악소리로 꽉 차있었고, 곳곳에서 격렬한 사랑의 키스를..나누는 게이와 레즈비언들에 삼바옷을 입고 반나체로 활보하는 트렌스젠더까지.. 이 곳 전체가 거대한 클럽이 된 기분이었다. 이들과 같이 광란의 밤을 보낼 수는 없었고, 그냥 구경만 했다.



 

저녁으로 먹은 라쟈냐. 맛은 그럭저럭



 아르헨티나식 아이스크림( Helado라고 부른다) 까지 먹고, 정신없이 하루를 마친다. 오늘도 남미사랑에서는 술판이 벌어졌지만 오늘은 좀 쉬고 싶어서 다른 층으로 올라가진 않았다.

Posted by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