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15 아르헨티나 여행 2,3일차 in 부에노스 아이레스

11.26 푸에르토 나탈레스 Josmar 호스텔에서 작성

 

아르헨티나쪽 이과수 마을인 푸에르토 이과수는 여러 면에서 빅토리아 폭포 마을과 닮았다. 관광을 위해 생겨난 여행자 마을이라 여행자 편의시설이 한 곳에 몰려있고, 조용한 분위기에 안정된 치안까지. 그리고 게이트가 2개 밖에 없는 조그만 공항인 것도 마찬가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는 버스로 19시간이지만 비행기로는 두시간 반. 장거리 버스타기 시간도 아깝고 돈 차이도 얼마 안 나서 비행기를 선택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 스페인어로 좋은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위치상 서울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제일 가까운 도시이다. (서울 정반대편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동쪽 해상) 우리나라와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 정말 지구 절반을 돌아온 거구나 하고 괜히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씩 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배낭 하나에 의지해 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여행을 한다는 사실이 실감나곤 하는데, 오늘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그 사실이 확 와닿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내선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호스텔 남미사랑으로 간다. 남미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정보도 얻고 동행도 구하고 한식도 먹고 싶어서 주저없이 남미사랑을 선택했다. 버스비가 현금 6페소, 카드 3.5페소 밖에 안 하니 (한국돈으론 600, 350) 물가가 싸진 걸 체감할 수 있다.



오후에 도착해서인지 남미사랑에는 다들 나가고 남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체크인을 하고 빨래를 맡긴 뒤 주변 산책을 나섰다.



엠빠냐다(Empanada)라는 음식. 우리나라 만두랑 놀랍게도 똑같은 모양이라 먹을 때마다 신기헀다. 단지 만두피를 두껍게 만들어서 씹는 느낌이 빵 같다는 게 차이.



가이드북에 의하면 아르헨티나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강국이고 소를 잡아서 가죽만 챙기고 고기는 버렸다는 시절(아마 1940~50년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유럽보다 더 유럽 같은 도시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도시는 유럽 느낌이 많이 난다. 케이프타운이 영국을 닮았다면 이곳은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닮은 것일까? 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반 세기 전에는 강대국이었다고 하지만, 여러 경제위기와 군부정권을 겪으면서 지금의 아르헨티나 경제는 한마디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에 외화부족까지. 달러가 풍족한 여행자들에게는 싼 가격으로 여행할 수 있어 천국 같은 곳이지만 현지인들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지 짐작할 수가 없다.



  원래는 시내 중심부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30분 정도 신나게 걷고 나서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아서.. 마테 한잔 마시고 다시 원래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아르헨티나에 마테차가 유명하다고 해서 현지인들처럼 마테전용 찻잔에 찻잎과 뜨거운 물 부어서 마셔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파는 데가 거의 없고 다 티백에 타서 준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대성당과


 

그 옆에 보이는 대통령궁. 내일 아침에 보러 올 곳들이다.


 

8시쯤 남미사랑에 들어가 아사도 파티를 시작했다. 아사도Asado라고 해서 아르헨티나식으로 고기를 구워서 맘껏 먹는 자리였는데, 어떻게 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맛있었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소가 사는 이곳은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에서 메뉴판과 가이드북을 보니 아르헨티나의 음식이 다양하지는 않지만(피자, 소고기, 파스타, 엠빠냐다 정도..), 고기가 맛있기 때문에 고기만 계속 먹어도 안 질릴 것 같다.

 

오랜만에 한국사람들이 가득한 떠들썩한 술파티에 가니 처음엔 어색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밌게 어울려 놀았다. 다들 나이도, 출신 지역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여행자라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라고 매번 느끼게 된다. 오랜만에 술과 고기를 잔뜩 먹으니 잠이 오지 않아 숙소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가 늦게 잠들었다.

 

 

 

 

 

 

다음날은 아침에 빨래를 찾고 시내를 쭉 둘러보기 위해 구경을 나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계획도시인지 도로들이 다 바둑판 모양으로 쭉쭉 뻗어있다.

 

사실 어제와 오늘은 왠지 모르게 하루종일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괜히 달러가 부족해 돈이 떨어질 것만 같았고(돈이 부족해 ATM에서 뽑으면 암환율이 아닌 공식환율로 뽑히기 때문에 돈을 1.5배 더 내야하는 ATM을 쓰는 게 너무 아까웠다), 앞으로의 불확실한 일정 때문에 빨리 이동하지 않으면 보고 싶었던 것을 다 못 볼 것 같았다. 게다가 어제 남미사랑에 도착하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할 수 있는 것들 (공연, 식당, 박물관 등등)이 잔뜩 적혀있었는데, 가이드북에 공항에서 받은 정보책자에 이 정보까지 더해지니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보여서 더 혼란스러웠다.

 

불안한 나머지 왠지 숙소에 나온 정보들을 다 섭렵해야 할 것 같아 호스텔 매니저 형한테 그 파일을 달라고까지 했다가 한 소리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왜 남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하려고 하냐. 너만의 루트대로 여행하면 되잖아 그 형은 파일 주기가 귀찮아서 농담삼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마 빡빡한 스케줄에 좀 지쳐있었던 것 같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해야 할 60가지가 있더라도 60개를 다 채워야만 행복한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닌데, 내가 하고싶은 대로 여행하면서 나만의 루트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것을 따라가려고 했던 것이다. 관광할 것 60개가 있으면 60개를 다 체크해야 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을 여행하면서 조금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가 발길이 닿는 데로 한번 다녀보기로 했다

 

  우선 환전을 하고, 항공사 사무실에 들러 엘 칼라파테로 가는 표를 샀다. 암환전 덕분에 항공사 사무실에 직접 가서 현금으로 표를 사는 것이 인터넷 결제보다 20%정도 싸다. 환전이야 시내 중심가를 걷다보면 깜비오~를 외치는 암환전상이 많으니 걱정할 필요 없었고 표도 무난하게 샀다. 


 


  먼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5월 광장과 그 바로 앞에 있는 대통령 궁부터 방문했다. 주말과 휴일에는 무료 가이드 투어가 있어서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었다.



 입구. 입구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초상화가 여기저기 걸려있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내가 아르헨티나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걸 다시한번 실감했다.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중 하나인 에바 페론. 유명한 배우였다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어 여성운동으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전에 한국에서 에비타라는 뮤지컬을 봐서 알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 들어가면 제일 알아보고 싶은 사람 중 하나.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저 사진.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쿠바사람인 줄 알았는데.. 역시 한국돌아가면 알아보고 싶은 사람이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도 꼭 봐야지



 내부에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져 있다.


 

 투어 시작. 다양한 색채가 마음에 든다.



 여성들의 방.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여성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곳으로 회의실로 쓰이는듯 하다.



 유명인들의 사진이 걸린 복도. 마라도나부터 메시까지 있다.



 

 에바 페론의 집무실이었다던 이곳. 


 대통령 집무실을 끝으로 투어를 마쳤다. 아는 것이 많이 없으니 감흥이 크진 않았지만, 아르헨티나에 왔으니 의례적으로 해야 할 관광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아깝진 않았다. 12시가 되니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11월의 아르헨티나는 날마다 점점 더워지는 중.



 

 토요일이라 주말을 맞아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많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매력 중 하나는 공원이 많다는 것.

 

 

 바로 옆의 대성당을 구경. 실제로 미사를 하는 성당이었는데, 미사 시간이 안 맞아서 나중에는 다른 곳에서 미사를 드려야 했다. 내심 이 곳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흔적을 찾길 기대했지만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이 곳에는 산 마르틴 장군의 유해가 묻혀있다. 산 마르틴 장군은 칠레, 페루(다른 나라도 독립시켰는지는 잘 기억 안남)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전설적인 장군으로, 아르헨티나에서 국부와 맞먹는 수준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파는 마테잔의 모습. 작은 호리병처럼 생겼다.


 대성당부터 오벨리스크를 지나 정처없이 계속 길을 걷다가, 너무 더워서 점심도 먹을 겸 카페로 들어왔다. 원래 론리플래닛에 있는 카페를 가려고 했지만 지나가다보니 괜찮은 곳이 있어서 그냥 들어갔다. 가이드북에 없어도 내 맘에 들면 그냥 가면 되지 싶었다.




  주문한 지 40분이 지나서야 나온 나폴리타나 피자는 그냥... 보이는 그대로의 피자 맛이었다. 늦은 김에 현지인처럼 천천히 여유를 즐겨보자고 생각하면서 여유롭게 먹고 커피까지 시켰다.


 

 아메리카노가 없고, 블랙커피를 시키니 에스프레소에 탄산수를 준다.



  길거리에 있는 탱고 스텝 가이드. 나중에 따라해봐야지.


  원래는 리골레타에 있는 유명한 공동묘지까지 가려고 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왠지 문을 닫았을 것 같아서 근처에 있는 유명한 서점으로 갔다. (이름은 까먹음) 원래 극장이었던 곳을 서점으로 개조해서 웅장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걷기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계획은 저녁에 하는 550페소짜리 저녁+레슨+공연이 포함된 탱고 쇼를 보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7시에 오기로 한 차가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아쉽게도 포기하고 내일보기로 했다. 픽업 차가 게을러서 안 온건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숙소 바로 앞 대로에서 대규모의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있어서 교통통제를 하는 바람에 차가 못 들어오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가까이 가서 보니 게이 퍼레이드! 게이 퍼레이드를 내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길거리는 이미 사람들의 대화소리와 음악소리로 꽉 차있었고, 곳곳에서 격렬한 사랑의 키스를..나누는 게이와 레즈비언들에 삼바옷을 입고 반나체로 활보하는 트렌스젠더까지.. 이 곳 전체가 거대한 클럽이 된 기분이었다. 이들과 같이 광란의 밤을 보낼 수는 없었고, 그냥 구경만 했다.



 

저녁으로 먹은 라쟈냐. 맛은 그럭저럭



 아르헨티나식 아이스크림( Helado라고 부른다) 까지 먹고, 정신없이 하루를 마친다. 오늘도 남미사랑에서는 술판이 벌어졌지만 오늘은 좀 쉬고 싶어서 다른 층으로 올라가진 않았다.

Posted by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