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16 Yukon2016. 3. 24. 00:52

3.17 유콘 여행 6일차.

3.19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 작성

 

유콘의 여름은 해가지지 않는다. 백야현상에 대해 배울 때는 그냥 신기하구나~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아침은 해가 뜨고 저녁은 해가 진다라는 당연한 진리가 틀리다면 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실감하게 된다. 해가지지 않으니 하루 종일 야외활동을 할 수 있고, 해가 몇 달동안 따뜻한 빛을 쏘아주니 극지방인데도 온도가 20도가 넘게 올라가 반팔을 입고 다닌다. 잠을 자려면 두꺼운 커튼을 치고 밤처럼 해놓아야 한다. 다음에 올 기회가 있다면 꼭 여름에 와서 직접 느껴봐야겠다. 

 

 

 

 

 

파멜라의 집 거실. 아늑하다. 이렇게 넓은 집에 뒷마당 앞마당 차고 다 갖추고 사는 집 보면 부럽기만 하다.

 

 

오늘과 내일은 차를 빌려서 드라이브를 다닌다. 편한 이동을 위해선 여행기간 내내 차를 빌리는 것이 좋겠지만, 보험료 포함 하루 100달러(9만원)이나 되는 가격에 놀라서 딱 이틀만 빌렸다. 여기에 하루 200km 이상 달리면 추가비용을 내야되고, 가스충전도 내 돈으로 해야되니 완전 바가지 쓴 기분이다. 이 동네에선 옆 도시만 다녀와도 왕복 300km인데, 하루 200km라니 장난하나?

 

 

 

우선 렌터카 회사에 갔다. 차는 주행거리 10000km가 갓 넘은 새 차인데 스노우타이어가 아니라 약간 불안하다. 스노우타이어가 장착되어 있는 차가 없다는데 그렇다고 차를 안 빌릴 수는 없으니 큰 길로만 다니기로 했다. 보험이 하루에 25달러라 들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보험 안 들고 운전한다는게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아닌 것 같아 보험을 신청했고, 결과적으로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보험 아니었으면 돈 엄청 물어줄 뻔 했다.

 

오늘의 드라이브코스는 남쪽으로 내려가 클론다이크 고속도로를 따라 카크로스를 지나 미국 국경을 넘어 알래스카의 스캐그웨이Skagway까지 가는 180km 코스로, 예전에 금과 나무를 실어나르던 역사깊은 도로이다. 원래는 금요일에 가려고 했는데, 눈보라가 치면 도로가 막힐 수 있으니 미리 다녀오라는 켄의 조언에 따라 오늘 가기로 했다.

 

 

 

운전을 하니 드디어 이동의 자유를 얻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슬슬 시동을 걸고 고속도로를 따라 카크로스까지 달린다. 차가 없고 길이 일직선으로 되어있어서 차랑 부딪힐 걱정은 없는데 속도 조절이 안 된다. 110km로 달려도 느리게 가는 것 같은 기분. 가는 길은 정말 산과 물이 어우러진 절경중의 절경이라서 입이 딱 벌어진다(영어로도 Jaw-dropping이라고 하더라)‘는 표현이 딱 맞다. 몇 번이나 멈춰서 사진을 찍고 갔다. 얼어붙고 눈이 쌓여도 이정도인데 여름엔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본다.

 

 

 

 

 

 

 

원래 계획은 카크로스에 가서 커피 한잔 하고가려고 했는데, 유콘루트 열차가 다니지 않는 겨울의 카크로스는 단 하나의 가게도 연 곳이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우체국과 관광안내소도 문을 닫았다. 주차되어 있는 차가 있으니 누군가 살고 있긴 한데 뭐하면서 사는걸까? 적막한 마을에서 사람이 많을 여름을 상상하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휴게소에서 커피와 정직한 핫도그(진짜 햄이랑 빵만 있음)를 먹고, 계속 남쪽으로 향한다.

 

 

 

 

 

 

 

 

 

산 위로 점점 올라가면서 눈이 내렸는데, 만년설이 쌓인 산과 구름 낀 하늘이 구분되지 않아 눈앞이 순백이 되었다. 온통 하얀 풍경 속에서 검은색 도로만이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주는데, 신비로우면서도 무섭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지나가는 차를 못 본지 20분쯤 되어서 인기척이 그리워질 때 쯤, 산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국경이 나타났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니 반갑기만 하다. 이 사람들은 일년 내내 여기서 근무하려면 엄청 심심하겠지.. 미국 세관에서 까다롭게 검사할까봐 걱정했는데, 세관 아저씨가 갑자기 내 여권을 보더니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미군출신으로 일년동안 한국에서 카추사로 근무했다던데, 이런 데에서 만나게 되다니 참 세상이 좁다. 어쨌든 이 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국경을 통과했다. 

 

 

산을 내려가니 눈이 그치고 저 멀리 태평양이 보인다. 목적지인 알래스카 스캐그웨이에 도착한 것이다. 국경선을 보면 미국 알래스카 주 영토가 캐나다 해안선을 따라 내려와 있어서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아마 알래스카 고속도로를 지어주는 대가로 캐나다에게 해안선을 달라는 요구를 해서 지금과 같은 국경선이 그어진 것 같다. 캐나다는 도로를 얻고 미국은 전쟁과 물류를 위한 해안기지를 얻는 윈윈 협상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국경선을 잘 살펴보면 역사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롭다.

 

 

스캐그웨이는 골드러시 때 생긴 마을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는 원주민어 스카구아Skagua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금은 텅 빈 거대한 항구와 공항을 보면서 골드러시와 전쟁 때 사람들로 가득했을 100년 전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카크로스보다는 큰 이 마을에도 역시 문 연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거리를 지키는 개도 쓸쓸하다.

 

 

 

  마을에서 간신히 발견한 카페. 유일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에서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지만, 오후 두시까지만 영업한다고 해서 바로 나와야 했다. 이 사람들은 겨울동안 집에서 뭐하고 사는걸까..? 아니면 겨울엔 다른데 가서 사나? 아직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떠나기 아쉬워 마을을 뒤진 끝에 네시까지 영업하는 커피숍을 발견했다! 이런 세련된 커피숍이 있다니! 시골마을에서 스타벅스를 만난 것 같은 어색함이다. 커피의 위대함을 느끼며 잠시 노트북을 꺼내 시간을 보낸.

 

 

 

 

 

  놀러온 마을 아이들. 심심해서 어떻게 살까? 학교는 있겠지?

 

 

돌아가는 길에 골드러시 공동묘지가 있어 잠시 들렀다. 골드러시때 왔다가 죽은 사람들이 묻힌 곳이다.

 

 

 

이 사람들은 머나먼 알래스카까지 와서 묻힐거라고 생각했을까? 이 사람들의 죽음은 행복한 죽음이었을까? 비석이 세워진 큰 무덤의 주인은 성공한 삶을 살았겠지만,

 

 

 

 

UNKNOWN이라고 적힌 나무팻말 아래 묻힌 사람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왔다가 불행하게 죽어갔을 것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혼자 공동묘지를 걸어다니다가,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들어 곧바로 차에 탔다.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고, 캐나다 국경에서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눈이 좀 그쳐 이제 하늘이랑 땅이 구분이 간다.

 

 

켄의 집에 저녁초대를 받아 6시까지 가기로 했지만 가는 길에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캠핑카가 모인 캠핑존에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나오는 길에 그만 캠핑카 하나를 후진하다가 들이받고 만 것이다. ㅡㅡ 한국에서는 사고낸 적 없는데 여기서 접촉사고를 내다니.. 뒤에 차가 있을거라고 생각 안하고 백미러를 안 본 내 잘못이었다.

 

 

문제의 캠핑카.

 

 

   다행히 튼튼한 캠핑카는 흠집 하나 안 나고, 내 뒷 범퍼와 백라이트만 살짝 금이 갔다. 보험 들어놓길 천만 다행이다. 차에 내려서 캠핑카 주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데, 캠핑카 주인이 심심했는지 맥주 한 캔 마시고 가란다. ? 이게 뭐지? 하면서도 디스 이즈 어드벤처!를 속으로 외치며 기꺼이 맥주를 받아마신다. 캠핑카 주인아저씨는 아들과 사위까지 셋이 캠핑카와 스노모빌을 끌고와서 3일째 맥주 + 고기 + 스노모빌 파티를 즐기고 있었는데, 셋만 있기 지루해질 때쯤 마침 내가 와서 차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뜻밖의 환대에 나는 엄청 당황했고, 손님이 와서 신난 아저씨는 나한테 자기네가 맥주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바비큐를 어떻게 구웠는지, 스노모빌이 얼마나 재밌는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난 민망해서 자리를 빨리 뜨고 싶었지만 얼떨결에 아들이 스노모빌을 태워줘서 생각 안하던 스노모빌까지 타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사고를 낸 가해자에게 맥주도 주고 스노모빌도 태워준 것이다. 캐나다의 후한 인심이란...

 

여기서 같이 자고가라는 부탁을 뿌리치고 다시 화이트호스로 향했다. 아직 이 당황스러운 상황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7시 반이 되어서야 켄의 집에 도착했는데, 안에는 켄 부부와 크리스티나, 그리고 켄의 다른 집에서 세들어 살고있는 사스Sas와 메리Mary, 그리고 켄 부부의 아들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까지 6명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라자냐를 배터지게 먹고 나서 켄 아저씨가 늑대를 잡은 얘기, 그리고 켄 아저씨가 크레바스에 빠졌다가 살아나온 얘기를 들었다. 이 아저씨 엄청 대단한 사람이었다. 영화에 나올만한 사건의 주인공이었다니. 하지만 아저씨가 말이 너무 많아서 다들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난 중간쯤부터 영어듣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아예 멍때리고 있었다. 영어에 계속 집중하자니 너무 피곤하다.

 

 

 

 

  켄 아저씨가 자기가 나온 잡지를 직접 보여주셨다. 이 아저씨 알고보니 유명인이었다.

 

 

  30m 크레바스에 빠졌는데 정말 천운으로 살아나왔다고.

 

그렇게 만찬을 마치고 열시 쯤 집에 돌아왔다. 오늘이 성 패트릭 데이라면서 시내 펍에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했지만 운전을 오래해서 피곤한데다 왠지 어색할 것 같아서 안 갔다.

 

내일의 드라이브를 기대하며 조금 일찍 잠이 들었다.

 

Posted by Joon'
해외여행/16 Yukon2016. 3. 24. 00:06

 

3.16 Day 5 유콘여행 5일차

3.19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 작성

 

유콘에서의 생활도 절반이 지났다. 유콘의 느림에 점점 적응해가고 있다. 이 곳 사람들은 여유롭고, 겨울스포츠를 즐기고, 그리고 친절하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것은 기본이고(Hello, how are you?) 길을 건너가려고 서 있으면 알아서 차를 세워준다. 이런 여유와 친절이 시골의 매력이 아닐까? 

 

 

 

오늘은 정든 Beez Kneez를 떠나 숙소를 옮긴다. 크로스컨트리 대회를 위해 한 스키 팀이 게스트하우스 전체를 빌려서 자리가 없다고 한다. 아침에 작별인사를 하고 나온다. 새로운 숙소는 시내 저렴한 호텔로 정하려고 했었는데 그렇게되면 밥을 다 사 먹어야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나간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시 외곽에 사는 파멜라Pamela라는 사람 집에서 3일을 머무르기로 했다. 공항이랑 가깝고 가격도 저렴해서 맘에 든다. Pamela가 저녁때 집에 온다고 해서 일단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 크리스티나가 머무르는 집에 맡겨놓고 저녁때 가지러가기로 했다. 첫 에어비앤비 이용이라 떨린다.

 

오늘은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도전한다. 10시에는 도착하려고 했는데 어제 오로라 보느라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에서 10시 넘어서야 나갔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버스시간이 남아 역사박물관인 맥브라이드McBride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찾아온 지 세 번 만에 드디어 입장 성공. 별 기대는 안했는데 유콘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에 대해 생각보다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놀랐다.

 

 

 

유콘의 역사를 요약하자면 1800년대 후반 탐험가들이 찾아오기 전에는 원주민들만이 살고 있었고, 1897(?) 금이 발견되면서 1차 전성기를 맞는다. 그때 거주인원이 35000명이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숫자다. 금과 나무를 나르기 위해 바닷가인 알래스카 Skagway부터 화이트호스까지 200km의 철도가 건설된다. 금이 다 떨어지면서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갔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2차 전성기를 맞는다. 일본의 침공을 막기 위해 미국이 미국 서부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알래스카 고속도로를 지으면서 교통이 좋아졌다고 한다. 지금은 셰일가스, 철광석과 같은 자원과 관광이 주 소득원인 것 같은데, 자꾸 사람이 빠져나가서 캐나다 정부에서는 유콘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세금도 깎아주고, 혜택을 많이 준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우고 크로스컨트리 스키 클럽으로 간다.

 

 

 

리프트가 늘어서 있고 사람이 바글바글한 우리나라 스키장을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동네 뒷산의 둘레길같은 느낌? 작은 건물이 하나 있고, 언덕 주변으로 여러갈래의 길이 나 있었다. 운영시간도 따로 없고, 스키가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가져와서 타면 된다.

 

 

처음 코스를 보았을 때는 리프트도 없는데 어떻게 스키를 타고 경사로를 올라가지? 생각했지만 이건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의 착각이었다. 크로스컨트리는 스키 종류도 다르고 타는 방식도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일단 스키가 더 길고, 뒤꿈치가 스키에 고정되어있지 않아 걸어가듯이 스키를 타야 한다. 알파인 스키에서는 스키 폴이 거의 안쓰이지만, 크로스컨트리에서는 앞으로 나가기 위해 폴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스키를 한번도 안 타본 사람인 것이다

 

 

어떻게 타야하는지 이론적인 설명은 들었지만 적응하는데 한참 걸렸다. 코스에는 편하게 갈 수 있게 11자로 파 놓은 길이 있는데, 처음에는 괜한 자존심에 그냥 가보려다가 안 된다는 걸 깨닫고 11자 홈에 스키를 붙여놓고 앞으로만 갔다. 그렇게 가도 땀이 뻘뻘 났다. 크로스컨트리는 전신운동이었던 것이다.

 

 

역시 주변의 풍경이 좋다

 

 

나중에는 요령이 조금 생겨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평일 오후의 초보자 코스라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할머니들이 동네 뒷산에 마실가듯이 스키타러 오는 걸 보고 캐나다가 왜 겨울스포츠 강국인지 실감했다.

 

 

두시간을 타고 오니 힘들어서 더 탈 수가 없었다. 처음에 스키를 세 시간만 빌려주길래 왜이렇게 짧은지 의아해했는데 알파인처럼 하루종일 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6시 반까지 숙소에 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어떻게 보낼까 하는 걱정으로 바뀌었고, 시내에서 시간을 좀 보내기로 했다.

 

 

 

 

기념품 구경좀 하고 Burnt Toast Cafe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 어제 브루어리 투어에서 맛있었던 유콘 레드를 주문해 본다.   

 

 

저녁메뉴를 고민하다가 엘크고기로 만든 소시지가 있어서 시켜봤는데 꿀맛이었다. 역시 맛집! 정직한 소시지와 매쉬드 포테이토의 조합이 좋다. 저녁타임 시작시간인 4시 반에 와서 손님이 나 혼자였는데, 웨이터가 심심했는지 자꾸 말을 걸어서 말동무좀 해 주다가 왔다.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 평범한 가정집이다. 숙소 주인 파멜라Pamela는 파크 레인저Park Ranger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원 관리인? 파멜라 집에는 나 말고도 칠레에서 이사온(!) 헤럴드가 살고 있었다. 어떤 사정으로 이 멀리까지 이사왔는지는 너무 복잡할 것 같아서 차마 못 물어봤다.

 

 

  방이 아늑해서 좋다. 혼자쓰는 방인데 4만원도 안하다니!

 

 맡겨놓은 짐을 찾으러 크리스티나의 숙소로 갔는데, 거기서 이번 여행 최고의 인연을 만났다. 바로 집 주인 부부인 켄Ken과 래나Lana. 60대 부부는 그냥 짐만 찾으러온 나보고 저녁을 먹으러 가라면서 따뜻하게 맞아줬다. 그래서 나는 얼떨떨하게 60대 부부와 크리스티나, 그리고 60대 부부의 친구아들과 다섯이서 마치 오래 알고지낸 사람처럼 앉아서 타코를 먹게 되었다.

 

 

  두 분은 너무 좋고,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나를 마치 어렸을때부터 알고지낸 사람처럼 대해주셔서 오히려 손님인 내가 마음의 벽을 허무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북극곰처럼 생긴 켄 아저씨는 경찰로 일하다가 은퇴해서 요즘은 여름에만 레인저로 일하는데, 사냥과 술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유콘 사람이다. 두 부부는 아들이 있었는데 10년도 전에 사고로 아들을 잃고 지금 집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은퇴한 뒤에는 일상이 지루해져서 하숙생을 들이기로 했고, 그 첫 번째 하숙생이 크리스티나가 된 것이었다.

 

 

 

켄은 사냥을 좋아해 집에 곰, 늑대 가죽이 있었고, 내가 주저하다가 사진을 찍고싶다고 했더니 나보다 더 들떠하시면서 어떤 포즈를 찍어야되는지 조언까지 해 주시면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더 재밌는 것은, 내 숙소 주인인 파멜라가 켄의 상사라는 것이었다! 내가 파멜라 얘기를 하면서 레인저라고 했더니 켄이 응? 나도 레인저인데? 하다가 알게 된 것이다. 인연이란 참 신기한 것이었다. 타코에 위스키, 차까지 마시고 꼭 다시 오라는 환대를 받으며 켄의 차를 타고 파멜라의 집까지 갔고, 나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켄과 파멜라는 위스키를 마셔가며 신나게 얘기를 나누었다.

 

 에어비앤비에 대한 얘기가 제일 흥미로웠다. 에어비앤비가 여행객과 호스트를 연결시켜주면서 중개수수료로 겨우 1~2달러만 떼어간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적어도 20%는 떼어갈줄 알았는데 2달러라니! 10% 떼어가도 뭐라할 사람 없을텐데..15%씩 떼어가는 부킹닷컴과 비교되는 멋진 기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켄도 파멜라가 적극 추천해줘서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신청해보기로 했다. 게다가 화이트호스 시에서는 부족한 여름숙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어비앤비를 신청하면 집 인테리어비를 제공해준다고 하니 안 할 이유가 없다.

 

 

파멜라네 집에 사는 개. 나보고 틈만나면 놀아달라고 방에 와서 날 빤히 쳐다본다.    

 

 

오늘 밤에도 오로라가 떴다. 지금 숙소가 시골이라 집 앞마당에서도 오로라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틀 연속 강렬한 오로라를 보고나니 오늘은 안 봐도 되겠다는 생각에 괜히 시큰둥했다. 어제보다 약하기도 했고, 오늘은 그냥 좀 쉬고 싶었다. 벌써 질려버린 건 아니겠지?

 

 

 

 

짧은 시간에 많은 인연을 만난 오늘 저녁이었다. 역시 인연은 우연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맞다.

Posted by Joon'
해외여행/16 Yukon2016. 3. 23. 23:04

3.15 유콘여행 4일차
3.19 아침 화이트호스 공항에서 작성

 

 

<화이트호스 여행 정보>


이곳에선 여름/겨울에 할 수 있는 레포츠의 차이가 크다.

 

- 겨울

개썰매 : Muktuk Adventures(www.muktuk.com)이 제일 유명하다. 어쩌면 여기서만 운영하는것일 수도 있다. 반일199$ 전일 299(279?)$. 2인1조로 6마리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얼어붙은 강 위를 달리는 코스. 반일로 신청하면 두시간정도 달린다.

 

오로라투어 : Aurora Borealis & Northern Lights Yukon (www.auroraborealisyukon.com)이 제일 유명하다. 10-2시 네시간 투어에 125$. 밴을 타고 불빛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 오로라를 본다. 신청하기 전에 날씨와 오로라 예보 체크 필수.

 

스노모빌 : 안 해봐서 어디가 유명한지는 모르겠다. 가격 반일 199$ 전일 299$

 

스키 : 크로스컨트리스키는 whitehorse cross country ski club에 가면 할 수 있다. 시내버스로도 갈 수 있음. 일일이용권 15$ 렌탈3시간 15$ 전일 20$

 

 

- 여름
카누/카약 : 시내 강변에서 카누/카약을 탈 수 있다. www.kanoepeople.com.


White Pass & Yukon Route : 화이트호스에서 출발해 카크로스를 거쳐 미국 Skagway까지 약 200km를 달리는 관광열차. 산속으로 기차길을 뚫어놔서 끝내주는 경관을 볼 수 있다.

 

각종 트레일 : 산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트레일 코스가 있다. 제일 좋은 건 밤에도 해가 안지기 때문에 24시간 언제든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카크로스 근방에서 출발해 Skagway까지 가는 Chilkoot Trail이 유명한 코스인 것 같다.

 

클루에인 국립공원 : 화이트호스에서 서쪽으로 170km 정도 달리면 유콘의 자랑 클루에인Kluane 국립공원을 만날 수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고, 카누, 캠핑, 등산 등 각종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음. 겨울에는 일부분만 개방되고, 관광안내소도 운영 안한다. Haines Junction이라는 도시가 베이스캠프.

 

 

- 공통

타키니 온천(Takhini Hotsprings) 시내에서 북쪽으로 20km정도 떨어진 온천. 12시 - 밤10시까지 운영하고, 10시부터 새벽1시까지는 온천 풀을 대여할 수 있다. 야외온천이라 겨울에 오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오로라를 볼 수도 있다. 입장료 10달러.

 

타키니 야생동물 보호구역(Takhini Wildlife Preserve) :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곳. 운영시간은 시즌별로 다르며 12시와 2시에 버스투어가 있다. 입장료 15$ / 버스투어를 신청하면 22$

 

드라이브 : 드라이브하면서 보는 풍경 자체도 멋있어서 하나의 관광코스로 넣어도 된다. 화이트호스 – 카크로스 – Skagway로 이어지는 Klondike Highway가 추천코스.

 

 

 


여행 4일차인 오늘은 오전에 개썰매를 탄다. 전날 오로라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8시 50분에 픽업차를 타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투어장소로 이동!

 

15분정도 달려 도착하니, 멀리서부터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개가 몇 마리 없을 줄 알았더니 100마리나 있다! 말 그대로 개판. 묶여있는 개들은 천성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애들이라 잠시도 쉬질 않고 좀 꺼내달라고 짖어댄다. 경주용 개 100마리가 스테레오로 짖어대니 서로 대화가 잘 안 될 정도. 개랑 별로 안 친한 나는 좀 당황했지만 개 매니아들은 엄청 좋아한다.

     

 

우선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방한복이라고 껴입고 온 건 여기선 그저 봄옷일 뿐이었다. 가이드는 내 옷을 보더니 당장 갈아입으라면서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두꺼운 패딩과 장갑을 건네준다.

 

 

오늘의 동행은 일본인 셋과 캐나다인 셋. 일본사람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일본인 가이드가 상주하고 있고 일본어로 된 서류도 준비되어 있을 정도이다. 아니면 일본사람들이 영어를 못해서 그런가..?

 

개썰매 하나당 여섯 마리가 붙는데, 그것도 아무나 붙이는 게 아니라 친한 개들끼리 붙인다고 한다. 사이 안 좋은 애들끼리 붙이면 싸움난다고. 개들을 줄에 연결하고 정렬시키는데만 시간이 꽤 걸렸다. 잠깐만 시선을 떼고 있어도 지들끼리 싸우고 엉키고 난장판이다.

 

 

간신히 썰매 세 개를 다 세팅하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출발! 개들이 신기하게 옆으로 안 새고 정해진 길을 따라 달린다. 냄새를 따라가는걸까? 썰매에 한명은 눕고 한명은 서서 드라이브(?)를 하는데 의외로 신경쓸게 많다. 개들이 너무 빨리 달리면 지치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조절도 해야되고, 개 줄이 엉키면 멈춰서 줄도 풀어줘야 되고, 개가 변을 보고싶어하면 멈춰서 편하게 변을 볼 수 있게 도와줘야한다. 만약 변을 보고 싶어하는데도 그냥 갔다가는...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잠시 쉬는 중. 이렇게 중간중간 쉬어가야 한다

 

 

얼어붙은 강을 따라 한시간정도 달리고 똑같은 길을 돌아오는데, 속도감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보이는 경치가 환상적이다. 겨울이란 이런거구나!! 격하게 느끼면서 계속 썰매를 몰았다.

 

 

 

동영상으로 봐야 제맛!

 

 

멋진 풍경

 

 

 

계속 달린다.

 

 

개셀카

 

 

주변 풍경이 너무 멋지다

 

 

슬슬 지루해질 때 쯤 썰매투어는 끝. 하루종일 하면 지루할 뻔 했다. 처음엔 199달러가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달려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강력추천 !!

 

 

 

다음일정은 시 외곽에 있는 유콘 브루어리 컴퍼니, 맥주공장 투어다. 지역맥주를 만드는 곳인데 맥주 제조방법이 궁금해서라기보다 맥주 7종류를 다 맛볼수 있다고 해서 투어를 신청했다. 점심은 간단히 근처 월마트에서 맥도날드로 때움. 맥도날드에는 딱 봐도 돈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만드는 8가지 종류의 맥주. 이름과 디자인이 특색있다.

 

 

30분정도 공장을 돌면서 설명을 해 주는데, 축구장 반정도 밖에 안되는 소규모 공장이라 별로 설명할 것이 없고, 가이드도 이미 사람들이 투어보다는 시음에 더 관심이 많은 걸 알기 때문에 간단히 진행한다.

 

 

 

드디어 맥주를 마셔볼 시간! 라거, 에일, 페일에일, 커피를 넣은 맥주까지 다양하다. 가이드는 아까와 달리 맥주 하나하나 따라주면서 각 맥주의 제조법, 특징, 판매량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완전 만족! 여기 살았으면 피처로 잔뜩 사갈텐데 아쉽다.

 

 

숙소에서 해먹은 저녁. 전의 파스타보다 업그레이드 되었다. 계란이랑 샐러드도 넣음(+스프라이트) 

 

 

좀 쉬다가 새로온 스위스인 일행 두명과 함께 다섯명이 오로라를 보러 나간다. 오늘은 구름은 좀 꼈지만 오로라가 센 날이라고 해서 반신반의하고 나갔다. 숙소에서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어제보다는 약하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오로라가 안 보인다... 실망..

  

근처에서 누군가 피워놓은 불을 발견해서 좀 놀다가기로 한다. 아마 누군가 오로라를 기다리다가 그냥 떠났나보다.

 

 

불 근처에서 놀고있는데, 저 멀리 희미한 오로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인지 오로라인지 구분이 안가지만 카메라로 찍어보면 오로라가 확실하다.

 

산 위에 걸쳐있던 희미한 오로라는 점점 커지면서 밝아지기 시작하고,

 

마지막엔 우리 머리위까지 와서 밝게 비춘다. 오로라 쇼 시작!

 

 

 

어제와는 다르게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고, 더 많이 흔들리는 것 같다.

 

 

 

 어제와는 다른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어제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불붙은 나뭇가지로 여러 컨셉사진을 찍어본다. 카메라랑 삼각대를 가져온게 천만 다행이었다.

 

 

 

 

 

 

 

 

 

불이 사그라들면서 손발이 얼어갈 때 쯤 오로라도 끝났다. 집에 돌아가라는 메시지일까?

 

 

 

 

 오늘도 만족스러운 오로라 관측이었다.

 

 

 

 

Posted by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