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Day 5 유콘여행 5일차
3.19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 작성
유콘에서의 생활도 절반이 지났다. 유콘의 ‘느림’에 점점 적응해가고 있다. 이 곳 사람들은 여유롭고, 겨울스포츠를 즐기고, 그리고 친절하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것은 기본이고(Hello, how are you?) 길을 건너가려고 서 있으면 알아서 차를 세워준다. 이런 여유와 친절이 시골의 매력이 아닐까?
오늘은 정든 Beez Kneez를 떠나 숙소를 옮긴다. 크로스컨트리 대회를 위해 한 스키 팀이 게스트하우스 전체를 빌려서 자리가 없다고 한다. 아침에 작별인사를 하고 나온다. 새로운 숙소는 시내 저렴한 호텔로 정하려고 했었는데 그렇게되면 밥을 다 사 먹어야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나간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시 외곽에 사는 파멜라Pamela라는 사람 집에서 3일을 머무르기로 했다. 공항이랑 가깝고 가격도 저렴해서 맘에 든다. Pamela가 저녁때 집에 온다고 해서 일단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 크리스티나가 머무르는 집에 맡겨놓고 저녁때 가지러가기로 했다. 첫 에어비앤비 이용이라 떨린다.
오늘은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도전한다. 10시에는 도착하려고 했는데 어제 오로라 보느라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에서 10시 넘어서야 나갔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버스시간이 남아 역사박물관인 맥브라이드McBride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찾아온 지 세 번 만에 드디어 입장 성공. 별 기대는 안했는데 유콘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에 대해 생각보다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놀랐다.
유콘의 역사를 요약하자면 1800년대 후반 탐험가들이 찾아오기 전에는 원주민들만이 살고 있었고, 1897년(?) 금이 발견되면서 1차 전성기를 맞는다. 그때 거주인원이 35000명이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숫자다. 금과 나무를 나르기 위해 바닷가인 알래스카 Skagway부터 화이트호스까지 200km의 철도가 건설된다. 금이 다 떨어지면서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갔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2차 전성기를 맞는다. 일본의 침공을 막기 위해 미국이 미국 서부 –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알래스카 고속도로를 지으면서 교통이 좋아졌다고 한다. 지금은 셰일가스, 철광석과 같은 자원과 관광이 주 소득원인 것 같은데, 자꾸 사람이 빠져나가서 캐나다 정부에서는 유콘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세금도 깎아주고, 혜택을 많이 준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우고 크로스컨트리 스키 클럽으로 간다.
리프트가 늘어서 있고 사람이 바글바글한 우리나라 스키장을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동네 뒷산의 둘레길같은 느낌? 작은 건물이 하나 있고, 언덕 주변으로 여러갈래의 길이 나 있었다. 운영시간도 따로 없고, 스키가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가져와서 타면 된다.
처음 코스를 보았을 때는 리프트도 없는데 어떻게 스키를 타고 경사로를 올라가지? 생각했지만 이건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의 착각이었다. 크로스컨트리는 스키 종류도 다르고 타는 방식도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일단 스키가 더 길고, 뒤꿈치가 스키에 고정되어있지 않아 걸어가듯이 스키를 타야 한다. 알파인 스키에서는 스키 폴이 거의 안쓰이지만, 크로스컨트리에서는 앞으로 나가기 위해 폴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스키를 한번도 안 타본 사람인 것이다
어떻게 타야하는지 이론적인 설명은 들었지만 적응하는데 한참 걸렸다. 코스에는 편하게 갈 수 있게 11자로 파 놓은 길이 있는데, 처음에는 괜한 자존심에 그냥 가보려다가 안 된다는 걸 깨닫고 11자 홈에 스키를 붙여놓고 앞으로만 갔다. 그렇게 가도 땀이 뻘뻘 났다. 크로스컨트리는 전신운동이었던 것이다.
역시 주변의 풍경이 좋다
나중에는 요령이 조금 생겨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평일 오후의 초보자 코스라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할머니들이 동네 뒷산에 마실가듯이 스키타러 오는 걸 보고 캐나다가 왜 겨울스포츠 강국인지 실감했다.
두시간을 타고 오니 힘들어서 더 탈 수가 없었다. 처음에 스키를 세 시간만 빌려주길래 왜이렇게 짧은지 의아해했는데 알파인처럼 하루종일 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6시 반까지 숙소에 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어떻게 보낼까 하는 걱정으로 바뀌었고, 시내에서 시간을 좀 보내기로 했다.
기념품 구경좀 하고 Burnt Toast Cafe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 어제 브루어리 투어에서 맛있었던 유콘 레드를 주문해 본다.
저녁메뉴를 고민하다가 엘크고기로 만든 소시지가 있어서 시켜봤는데 꿀맛이었다. 역시 맛집! 정직한 소시지와 매쉬드 포테이토의 조합이 좋다. 저녁타임 시작시간인 4시 반에 와서 손님이 나 혼자였는데, 웨이터가 심심했는지 자꾸 말을 걸어서 말동무좀 해 주다가 왔다.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 평범한 가정집이다. 숙소 주인 파멜라Pamela는 파크 레인저Park Ranger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원 관리인? 파멜라 집에는 나 말고도 칠레에서 이사온(!) 헤럴드가 살고 있었다. 어떤 사정으로 이 멀리까지 이사왔는지는 너무 복잡할 것 같아서 차마 못 물어봤다.
방이 아늑해서 좋다. 혼자쓰는 방인데 4만원도 안하다니!
맡겨놓은 짐을 찾으러 크리스티나의 숙소로 갔는데, 거기서 이번 여행 최고의 인연을 만났다. 바로 집 주인 부부인 켄Ken과 래나Lana. 이 60대 부부는 그냥 짐만 찾으러온 나보고 저녁을 먹으러 가라면서 따뜻하게 맞아줬다. 그래서 나는 얼떨떨하게 60대 부부와 크리스티나, 그리고 60대 부부의 친구아들과 다섯이서 마치 오래 알고지낸 사람처럼 앉아서 타코를 먹게 되었다.
두 분은 너무 좋고,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나를 마치 어렸을때부터 알고지낸 사람처럼 대해주셔서 오히려 손님인 내가 마음의 벽을 허무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북극곰처럼 생긴 켄 아저씨는 경찰로 일하다가 은퇴해서 요즘은 여름에만 레인저로 일하는데, 사냥과 술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유콘 사람’이다. 두 부부는 아들이 있었는데 10년도 전에 사고로 아들을 잃고 지금 집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은퇴한 뒤에는 일상이 지루해져서 하숙생을 들이기로 했고, 그 첫 번째 하숙생이 크리스티나가 된 것이었다.
켄은 사냥을 좋아해 집에 곰, 늑대 가죽이 있었고, 내가 주저하다가 사진을 찍고싶다고 했더니 나보다 더 들떠하시면서 어떤 포즈를 찍어야되는지 조언까지 해 주시면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더 재밌는 것은, 내 숙소 주인인 파멜라가 켄의 상사라는 것이었다! 내가 파멜라 얘기를 하면서 레인저라고 했더니 켄이 응? 나도 레인저인데? 하다가 알게 된 것이다. 인연이란 참 신기한 것이었다. 타코에 위스키, 차까지 마시고 꼭 다시 오라는 환대를 받으며 켄의 차를 타고 파멜라의 집까지 갔고, 나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켄과 파멜라는 위스키를 마셔가며 신나게 얘기를 나누었다.
에어비앤비에 대한 얘기가 제일 흥미로웠다. 에어비앤비가 여행객과 호스트를 연결시켜주면서 중개수수료로 겨우 1~2달러만 떼어간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적어도 20%는 떼어갈줄 알았는데 2달러라니! 10% 떼어가도 뭐라할 사람 없을텐데..15%씩 떼어가는 부킹닷컴과 비교되는 멋진 기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켄도 파멜라가 적극 추천해줘서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신청해보기로 했다. 게다가 화이트호스 시에서는 부족한 여름숙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어비앤비를 신청하면 집 인테리어비를 제공해준다고 하니 안 할 이유가 없다.
파멜라네 집에 사는 개. 나보고 틈만나면 놀아달라고 방에 와서 날 빤히 쳐다본다.
오늘 밤에도 오로라가 떴다. 지금 숙소가 시골이라 집 앞마당에서도 오로라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틀 연속 강렬한 오로라를 보고나니 오늘은 안 봐도 되겠다는 생각에 괜히 시큰둥했다. 어제보다 약하기도 했고, 오늘은 그냥 좀 쉬고 싶었다. 벌써 질려버린 건 아니겠지?
짧은 시간에 많은 인연을 만난 오늘 저녁이었다. 역시 인연은 우연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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