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두바이 스탑오버 당일치기 여행

11.11 리우에서 이과수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작성

 

남미를 가기 위해 두바이를 거쳐 긴 비행기를 탄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브라질로 바로 넘어가는 남아프리카항공 비행기가 무려 150만원(!)이나 되었기에(왕복이 아니라 편도가격)직항을 선택할 수 없고 경유해서 싼 경로로 가야 했다. 희망봉 갈 때 만난 한국아저씨 말로는 키세스여행사 통해서 학생항공권으로 하면 70~80만원 선으로도 살 수 있다고는 한다.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으나 (가격은 비슷) 왠지 두바이가 한 번 가보고 싶고 항공사 서비스도 좋다고 해서 70만원정도 하는 에미레이트 항공을 선택했다.

 

원래 계획은 도하에서처럼 무료 호텔을 제공받은 뒤 VIP처럼 호텔차를 타고 가서 푹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두바이 도착 며칠 전에야 호텔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큰 혼란에 빠졌다 @_@. 어떻게 된 것이냐면, 항공사 정책 상 경유시간이 24시간이 넘어가면 당일 연결되는 비행기를 일부러 타지 않은 것이므로 무료호텔 제공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즉 내 비행기는 두바이에 새벽 5에 도착하고, 바로 두 시간 뒤에 리우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음에도 다음날 아침 7 비행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예약할 때 두바이에 오래 있으려고 2시간 대신 26시간 경유를 선택한 것이었는데ㅠㅠ 괜히 꾀를 부리다가 공항에서 노숙이나 하게 되었다. 스탑오버에 대해 확실히 알아보고 예약합시다 ..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두바이를 제대로 즐겨보기로 했다. 두바이에서는 사람이 돈을 쓰면 얼마나 무모한 짓까지 할 수 있나? 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두바이 부(?)의 상징인 인공섬 팜 주메이라와 세계 최고()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를 구경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고, 자세한 이동이나 위치는 두바이에 도착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의 마지막 만찬(?).

 

여행을 두 달간 하면서 가장 달라진 것이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여행 시작인 방콕에서만 해도 비행기 탈 때까지 방콕에 대해 아는 것이 카오산 로드랑 팟타이밖에 없어서 엄청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 도시에 대해 잘 몰라도 도착하자마자 공항 관광안내소에 가서 여행책자를 받은 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끌리는 대로 당일 일정을 짜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마음가짐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만약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다 추억이 되겠지.


에미레이트항공 기내식. 역시 오일머니로 무장한 항공사답게 기내식부터 마음에 들었고, 의자에 달린 모니터에 최신 영화와 음악이 많아서 지루하지 않았다. 가장 좋았던 건 전기플러그가 있어서 충전을 하면서 노트북을 쓸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최신비행기인 A380에서는 와이파이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A380을 타보고 싶었지만 보잉777기라서 아쉬웠다. 아마도 위성을 이용해서 인터넷에 연결하는 것 같다. 20시간 넘는 비행시간동안 영화만 말레피센트, 파이 이야기, UP, 인셉션 네 개를 봤다.

 

두바이 공항에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중동 항공사들은 예상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 것 같다) 경유 24시간 이상이라 체크인을 다시 해서 다음날 티켓을 받고, 두꺼운 관광책자와 지도를 챙겨 공항을 나섰다. 돈은 50달러 환전해서, 5만원, 두바이 돈으로 181 디르햄으로 두바이에서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두바이 공항을 오가는 수많은 비행기들을 보며 두바이는 어떻게 환승의 메카가 되었는지 생각한다. 오일머니를 많이 투자한 덕분인 것도 있지만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리적 위치가 더 큰 이점이 아닐까

 

이 메트로+버스 1일이용권 덕분에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버스노선을 몰라서 이용하지 못해 조금은 아쉬웠다.

 

처음 메트로를 타고 간 곳은 Marina 어쩌구 하는 팜 주메이라 근처의 호텔 밀집지역이었다. 메트로를 새벽6시 반에 탔기 때문에 팜 주메이라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인 것 같아 (나중에 알고보니 팜 주메이라가는 모노레일이 10시부터였기 때문에 바로 가지 않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근처를 둘러보기로 한 것이었다.

 


사막과 현대적인 고층빌딩들의 조합.

편의점에서 사먹은 아침

두바이에서 걸어다니다가 더위먹을까봐 걱정했는데, 11월이라 그런지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아니었다. 단지 지도에 축척이 안 나와있어서 생각보다 오래 걸어야 했다는.. 메트로에서 30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해변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조깅이나 수영을 하고 있었다. 글로벌 도시(?) 두바이답게 아랍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것 같았다. 조깅하는 사람들부터 가게 직원들까지 인종적인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다.



해변에서 팜 주메이라 입구까지 한 시간을 걸었다. 택시를 탈 수도 있었지만 걷기 좋은 날씨라 한 번 빌딩숲 속에서 산책을 해 보고 싶었다. 길거리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좀 으스스하긴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트램 공사가 한창 진행 중. 대부분 인도나 파키스탄 사람들로 보였다. 이들을 보며 70년대에 중동에서 피땀흘려 일했다던 우리나라 노동자들을 생각한다. 80년대에 중동에서 일했다는 인도에서 만난 한국아저씨도 이곳을 알고 있을까

공사판을 헤치고 팜 주메이라 입구의 모노레일에 도착. 팜 주메이라의 전경을 담은 타일이 전시되어 있었다. 직원은 모노레일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그것도 걸어서 도착한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한 시간 동안 여행책자 좀 보다가 10 모노레일 탑승. 모노레일은 야자수의 뿌리부분에서 시작해 야자수의 끝에 위치한 아틀란티스 호텔까지 간다


모노레일의 종착지 아틀란티스 호텔.

 

야자수 섬은 대부분 고급 리조트와 별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중심부는 아직도 공사중이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느꼈다. 만약 기름이 다 떨어지면 이 도시엔 무엇이 남게 될까? 지금 항공이나 금융에 투자하는 것도 나중에 기름이 다 떨어질 때를 대비한 투자일까? 잡생각들이 머리 속을 떠나질 않았다.

 

아틀란티스 호텔은 호텔과 워터파크가 전부였기 때문에 별로 할 건 없어서, 스타벅스에서 커피하나 시켜놓고 블로그를 올렸다. 오랜만에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에 와서 아프리카에서 쌓아놓았던 블로그를 잔뜩 올리려고 기대했지만, 인심이 야박해 와이파이를 한 시간 밖에 쓸 수 없었다. 이 곳만 그런 게 아니라 두바이 전체적으로 카페에 가면 한 시간만 쓰게 해 주는 것 같다. 역시 우리나라가 카페 와이파이는 최고



모노레일에서 저 멀리 보이는 부르즈 알 아랍. 직접 가보진 않았다.

 

팜 주메이라를 마치고 원래는 두바이 몰로 바로 가려고 했지만, 모노레일에서 메트로로 돌아오는 택시를 같이 탄 독일인 부부의 추천을 받아 구 시가지 구경을 해 보기로 했다. 이 부부는 일주일 동안 휴가를 왔는데, 구 시가지는 꼭 가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시가지는 석유가 발견되기 전 한 부족(물론 지금은 석유재벌이 되었다)이 살았던 마을이다. 나는 이곳이 같은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의 거리나 인도 라자스탄 지역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조금 더 이슬람스러운(?) 거리의 풍경을 맛볼 수 있었다. 중동이 이슬람 문화권의 핵심이니 터키나 인도보다는 그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슬림 전통주택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



두바이 시가지의 운하



전통시장. 이곳의 호객행위는 인도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점심으로 먹은 팔라펠과 주스 그리고 빵. 팔라펠이 뭔가 해서 먹어봤더니 그냥 다진 콩 맛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아랍어로 쓰여진 메뉴를 보면서 문화의 보존에 대해 생각한다.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고 쓰게 되어있고 여전히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원래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지만 지금은 서양식으로 바뀐 걸 생각하니 서양의 영향이 얼마나 컸기에 글 쓰는 방식까지 바꾸게 되었을까, 중동 국가들은 어떻게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 중동 국가들은 서양 국가들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여행 내내 서유럽 국가들이 얼마나 세계 곳곳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까지 생각해 본다. 사실상 5개 대륙 중에 아시아를 제외한 나머지는 서유럽 국가들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정복한 곳이 대부분이라, 그 나라의 전통 문화를 느끼기가 아시아 국가들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두바이의 주인?이자 세계적인 석유재벌이 사는 집. 이름이 너무 길어 읽기 힘들다.



전통 양식으로 만든 공중전화박스

 

시내 구경을 마치고 세시쯤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라는 두바이 몰로 향한다. 여기서 남은 시간을 다 보내고 9시쯤 공항으로 가려고 한다.



두바이 몰은 부르즈 칼리파와 연결되어 있다. 21세기 바벨탑인 부르즈 칼리파를 실제로 보니 사진과는 다른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슷한 높이(700m정도)의 테이블 마운틴이나 스피츠코프 산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자연이 만들어낸 높이와 사람이 만들어낸 높이의 차이일까.



4층으로 구성된 두바이 몰은 말 그대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서, 둘러보다가 다리가 아파 쉬엄쉬엄 다녀야 할 정도였다. 여기서 읽을 책과 남미 가이드북을 사고(남미 가이드북은 한국에서 무거워서 안 가져왔는데, 남미 가려면 꼭 사야할 것 같아서 론리 플래닛으로 하나 샀다) 나머지 시간은 카페에서 블로그 올리는 데 보냈다.



저녁으로 먹은 그 유명한 뉴욕의 쉑쉑 버거.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Shake shack 간판을 보자마자 이거야!! 싶어서 바로 결정했다. 뉴욕을 못 가니 이걸로라도 대신해야겠다.



맛은.. 버거가 쫄깃쫄깃 하다는 느낌이어서 맛있었고, 밀크쉐이크와 버거의 조합이 이상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랐다.



부르즈 칼리파의 압도적인 야경



 

마지막으로 두바이 몰의 유명한 분수 쇼를 감상했다. 6시 반부터 30분마다 노래와 함께 분수 쇼를 해 주는데, 매번 노래가 달라 세 번이나 보고 왔다.

 



  첫 번째로 본 쇼가 게임 문명4 OST로 쓰였던 Baba Yetu라는 노래였는데, 도입부를 듣자마자 소름이 쫙 돋았다. 이 노래를 좋아해서 가끔 생각나면 듣고, 유튜브에서도 두바이 몰의 분수쇼를 봤는데 실제로 여기서 보게되다니!! 이렇게 뜻하지 않게 익숙한 노래를 만나게 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데, 인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다가 미용사가 Its time to disco를 틀었을 때, 스와콥문트 댄스바에서 유럽사람들과 함께 Cotton-eye Joe를 들었을 때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였다.



공항에서 먹은 라면. 에미레이트 항공에서 주는 밀바우처에 메뉴중 하나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엄청난 기대를 안고 공항 내 일식집으로 갔지만, 밀바우처를 써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고작 컵라면이라 아쉬웠다..(일식집에서 농심라면을 주는게 아이러니) 그래도 얼마만에 먹는 라면인지!! 일본라멘을 기대했는데 신라면이 나와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짧은 일정이었으나 많은 생각을 남긴 두바이 스탑오버 끝. 이제 남미로 향한다.

Posted by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