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브라질 여행 3일차 in 리우

11.14 아침 푸에르토 이과수 El Guembe 호스텔에서 작성

 

여행을 오래하다 보면 무기력증 혹은 매너리즘이 찾아온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머지 여행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증상을 말하는데, 보통 여행 3개월 차에 많이 찾아온다고들 한다. 나는 이 여행-무기력 증후군(내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다)이 슬럼프랑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슬럼프가 온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것이고, 슬럼프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슬럼프는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에 관심을 끄고 살아도 정말 여행-무기력 증후군이 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저조한 날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프리카 일정이 너무 고달파서 그런가? 오랜만에 혼자 있게 되어서 그런가? 아프리카 여행의 마지막쯤부터 자주 피곤해졌으니, 아마 당분간 여행 템포를 조금 늦추어야 될 것 같다. 결심을 곧바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 12까지 침대에서 쉬다가 이과수행 버스표를 사러 나갔고, 푹 쉬고 나가니 확실히 나았다. 이과수는 이틀 뒤 아침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버스터미널 가는 길도 익히고 싼 버스표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 버스터미널과 달리 이곳은 버스회사별로 표를 따로 사야하는, 공항이랑 비슷한 시스템이다. 한 창구에서 모든 표를 살 수 있는 우리나라가 사는 사람들에겐 편리하지만 버스회사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한 시스템이 아닐까? 어쨌든 나는 이과수로 가는 버스를 운영하는 두 회사를 미리 알아놓았기 때문에 가격비교를 해 가며 212헤알(9만원정도)짜리 표를 샀다. 아침 8 표라 2만원정도 아껴서 살 수 있었다. 이과수까지 무려 24시간.. 아프리카에서 버스타는데 적응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리우의 버스. 운전수와 돈 계산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박물관이 많아서 시내에 가면 썰렁할 것 같았고, 도시 산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인 산타 테레사Santa Teresa 라는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버스를 다시 타고 시내로 와서 일요일이라 황량하고 조금은 으스스한 도심을 걸어갔다. 지나가다가 들른 이곳은 대성당. 성당이라고는 전혀 믿겨지지 않지만, 25000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성당이다.



일요일이라 혹시 미사를 하나 궁금했지만 오후에 가서 그런지 내부는 썰렁하기만 했다.



산타 테레사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Escalator Selaron에 도착! 칠레 아티스트 Selaron이 세계 각국의 타일을 가져와 계단을 꾸며놓은 곳으로, 론리 플래닛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은 만큼 아름다웠고, 사람들도 바글바글했다. 산타 테레사 지역이 예술가와 히피들이 모여사는 지역으로 유명한 만큼, 이곳에 오자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점심으로 먹은 샌드위치와 아사이주스. 브라질 특산품인 아사이를 처음 먹어봤는데, 아사이베리만이 아니라 다른 과일을 섞어서 그런지 새콤달콤 오묘한 맛이 난다. 바나나와 딸기를 반반씩 섞은 느낌?


빨리 먹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단이 길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타일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작은 산 중턱의 예쁜 집들골목의 바와 레스토랑,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 산타 테레사는 우리나라의 경리단길이나 이태원을 닮아있었다.



기다리는 줄 아님. 그냥 길거리에서 맥주한잔하면서 대화하는 사람들이다

 

난 개인적으로 리우의 해변보다 이곳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해변이 화려하고 시끌시끌한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좀 더 아기자기하고 조용해서 좋았다.

여기가 왠지 맘에 들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면서 저녁시간까지 기다리기 위해 야외 카페에 왔다. 브라질 전통 칵테일이라는 카피리냐Caipirinha를 시켰는데, 모히또랑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분위기에 취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 


기다리던 저녁시간! 오늘은 브라질 전통음식인 페이조다Feijoada를 먹기 위해 가이드북에 나온 식당의..옆집으로 향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식당은 사람이 꽉 차서 발디딜 틈이 없었기 때문에 꿩 대신 닭으로..)


 페이조다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고기요리로, 예전 아프리카 노예들이 먹던 방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검은콩과 고기를 넣어 끓인 것 같은데, 전날 뷔페에 갔을 땐 이 음식을 알기 전이라 팥죽인줄 알고 안 먹었더니 알고보니 그 뷔페에서 제일 비싼 음식었다는..


 이렇게 한 국자 덜어서 밥이나 빵이랑 같이 먹는다. 처음에 주문한 게 나왔을 때는 양이 너무 작아보여서 이게 뭐야? 싶었는데, 저 뚝배기가 고기로 꽉 차 있었고 빵과 밥 밑에 돼지고기도 한 덩어리 숨어 있어서(!) 다 먹는 것이 쉽지 않았다.

  

 브라질 식당들은 특이하게도 메뉴가 대부분 2인분기준으로 되어있고, 1인분을 시키면 반값이 아니라 70%정도를 내야 했다. 혼자 다니는 게 밥 먹을 때는 아쉽다ㅠㅠ


산타 테레사에서 본 야경. 저녁을 먹고도 해가 지지 않아 걸어서 내려와서 메트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산타 테레사 바로 아래에는 삼바 클럽으로 유명한 라파Lapa 지역이 있었지만, 오늘은 일요일이라 대부분 문을 닫아서 내일 오기로 했다.

 

갈수록 리우가 맘에 들어지고 있다. 

Posted by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