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 11.8 브라질 여행 1,2 일차 in 리우 데 자네이루

11.13 저녁 푸에르토이과수 El Guembe 호스텔에서 작성


  남미에 온 것은 아프리카처럼 '지금 안가면 나중에 못 가볼 것 같은 곳'이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남미에서 며칠을 보내느냐가 문제였고, 한국 여행사와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일정에 며칠을 더하고, 연말에 미국을 가는걸 생각해 총 45일간 남미에 머물게 되었다. 다만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페루에서 시작해 브라질에서 끝나는데, 나는 브라질에서 시작해 페루에서 끝난다는 게 차이다. 브라질에서는 리우데자네이루와 이과수 폭포만 들른다.


  남미에서의 첫날은 아프리카의 첫날처럼 충격의 연속이었다. 내가 얼마나 남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나를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축구, 삼바, 책에서 본 몇가지 사회제도, 그리고 '위험하다' 라는 것 뿐이었다. 브라질에 치안에 대해선 안 좋은 말들을 워낙 많이 들어서 (배낭을 뒤에 매면 이미 너의 것이 아니다, 횡단보도에서 총든 2인조 강도를 만났다, 버스를 통째로 털어간다 등등) 브라질 도착하면서부터 긴장을 바짝 했다. 배낭맨 여행자는 강도의 1순위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항버스를 타고 근처에 내린뒤 빨리 걸어가거나 택시를 타려고 했다.


  공항에 내려서 확 와닿은 것은 이 나라가 영어를 안 쓴다는 것이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가 영어를 쓰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동안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는데, 갑자기 의사소통이 안되기 시작하니 당황스러웠다.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둔 것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 남미 온 이후로 내내 느꼈다. 포르투갈어가 스페인어랑 비슷해서 스페인어로 말하면 어느정도 알아듣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도 도움이 되었고, 나도 포르투갈어를 읽고 대충 의미를 추측할 수 있었다.


  

  공항버스를 타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내리는 것이 문제였다. 주요지점마다 기사아저씨가 사람들을 내리라고 부르길래 내가 내릴 보타포고(Botafogo)를 기다렸는데, 내가 내릴 곳은 주요지점이 아니었던 것... 정류장을 일일이 표시해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내리는 곳을 기사한테 직접 말해줘야 했고,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내릴 곳을 지나쳐 해변가에 도착한 뒤였다. 당황한 나는 버스기사한테 Stop, Stop, Yo ir Botafogo, Aqui Copacabana! 라고 외쳤고(직역하면 '나 보타포고 간다. 여기 코파카바나!'), 버스기사는 나를 내려주고서 알수없는 포르투갈 말로 쏼라쏼라 말했는데, 아마 다음부터는 내리기 전에 미리 말하라는 뜻인것 같았다.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택시기사 아저씨와의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섞은 기묘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Rua Guilhemina Guinie 157번지를 가야되는데 스페인식으로 발음해서 말해주자 아저씨가 흥미가 생겼는지 157을 포르투갈 식으로 발음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 다음부터 아마 이런 대화를 했던 것 같다.


기사아저씨 : Tu pais? (어디 나라?) 

나 : Coreano. (한국이요)

기사아저씨 : &*#^&#%!@

나 : ... (전혀 못알아들음)

기사아저씨 : Primero en Brasil? (브라질은 처음?)

나 : Si. Turismo (네. 여행이요). 

나 : Yo estudio Espanol un poco (스페인어 조금 공부했어요)

기사아저씨 : &^*(&(*&#&(@#$ (공부하다가 엎드려 자는 모션을 취한다. 아마 공부가 지겹다는 얘기인듯) 


  기사아저씨가 무슨 말을 했는진 전혀 모르겠지만 문법에 하나도 안 맞는 몇가지 스페인어 단어만으로도 대화가 된다는 게 신기했다. 차가 막혀서 중간에 내려 호스텔에 간신히 도착했고, 배고파서 밖에 나가 피자를 먹고 기진맥진해 잠이 들었다.


 첫 날 언어장벽과 함께 느낀 또 다른 충격은 브라질의 물가가 상상 이상이었다는 것이었다. 공항버스 6000원, 시내버스 기본요금 1400원, 지하철 1600원, KFC 세트메뉴 8000원.. 우리나라보다 모든것이 비쌌다. 남미라고 하면 막연히 못살고 물가도 당연히 쌀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다. 브라질은 GDP 기준으로 세계에서 7번째인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에 맞게 물가도 비쌀 수밖에. 내가 얼마나 남미 국가들에 대해 무지했고 얕보고(?) 있었는지 확실히 느낀 날이었다.




 둘째 날은 빨래를 하려고 아침부터 고생을 했다. 빨래는 해야되는데 숙소에는 빨래시설이 없고, 근처에 코인빨래방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숙소 직원이 검색해본 결과 세탁소가 전부였고, 세탁소 직원이 당연히 영어를 할 리가 없었다.. 빨래를 가져가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될 줄 알았는데, 빨래를 가져갔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또 &^@#*$(#$라고 했다. 오늘 다시 못 받는다는 뜻인지 아니면 내 빨래를 못 받는다는 얘기인지 몰라서, 할수없이 다시 숙소로 가서 론리플래닛을 들고와 뒤에 부록으로 달린 포르투갈어 회화집을 이용하고 마침 세탁소에 온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저씨의 도움으로 무사히 빨래를 맡길 수 있었다. 요점은 내일이 일요일이니 월요일 아침에 찾으러오라는 간단한 얘기였다.



 홀가분하게 빨래를 맡기고 드디어 시내 구경을 하러 나간다. 처음 도시에 왔으니 높은 곳에 가서 경치도 감상하고 지리도 익히고 싶었는데 예수상은 토요일이라 너무 사람이 많을 것 같고, 대신 리우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빵데아수카르 (Pao de Acucar),일명 빵산을 간 다음 해변가에서 주말에 나들이나온 사람들을 구경하기로 했다.



 리우의 버스. 새로 디자인을 했는지 깔끔하다. 리우는 2016년 올림픽 개최를 맞아 디자인, 사회기반시설, 치안 등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리우가 올림픽 개최지라는 것도 와서 알았고, 게다가 남미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었다.



 빵산에 도착. 직역하면 '설탕빵' 으로 예전에 이곳을 항해하던 포르투갈 사람들이 붙인 이름인데, 왜 이런 이상한 이름이 붙었는지는..까먹었다. 혹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써놓자면 우리나라에서 쓰는 '빵'이라는 말은 포르투갈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 빵은 포르투갈에서도 '빵'이다. 



 어쨌든 빵산은 해변가에 엄지손가락처럼 솟아있는 리우의 대표적 랜드마크이고, 케이블카를 두번 타고 올라간다. (오른쪽 뒤에 보이는 것이 빵산)



 빵산에서 만난 브라질의 흔한 주스가게. 저렇게 과일이 잔뜩 있는데 세가지를 고르면 같이 갈아서준다. 겨우 3천원! 브라질이 과일이랑 고기는 우리나라보다 싼 것 같다.


티켓과 주스. 국제학생증 덕분에 리우 주요 관광지들에서 반값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한번 더 타고, 빵산 정상에 도착!


뒤로 리우의 전경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것이 코파카바나Copacabana 해변. 빵산에서 보이는 리우는 부산과 많이 닮아있었다. 해운대와 광안리처럼 두 개의 긴 해변과 해변가의 수많은 레스토랑 및 카페들, 빽빽한 산들과 그 사이로 난 좁은 도로들 등등. 이때까지 '왜 이렇게 리우가 대단하다고 다들 난리지?'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해변에 내려가기 전까지는...


코파카바나 해변의 전경. 


비록 자연환경이 비슷하다고 해도, 리우의 매력을 만드는 건 바로 리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브라질에는 뭐든 심어도 잘 자란다고 하는데, 그만큼 사람도 잘 자라는지 남녀노소 가릴것 없이 다들 몸매가..장난이 아니다.



좀 걷다가 코코넛을 하나 시켜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로 한다. 


(지나가는 여자가 아니라 오른쪽의 서핑보드를 든 사람을 찍은 것이다..)


비치발리볼을 즐기는 사람들. 축구의 나라답게 해변에서 공으로 축구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윈드서핑? 을 즐기는 사람들. 리우의 해변은 파도가 세서 서핑보드를 들고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있어서 도시 곳곳에 자전거대여점이 많다.


FIFA GO HOME! 월드컵과 올림픽을 거치며 사회시설이 정비되었다고 했지만 그 댓가로 물가가 크게 올랐고, 도시 빈민들에게는 물가상승이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점심으로 먹었던 뷔페. 브라질에서 유명한 슈하스코(Churrasco, 꼬치에 구운 고기요리)를 맛 볼수 있었다. 브라질에는 이곳처럼 접시에 담아 1kg당 가격을 매기는 뷔페가 많이 있었는데,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몰라 무게를 안재고 먹어버려서 ㅠㅠ 일정금액을 내고 무제한으로 먹는 요금을 내야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접시를 담은 뒤 슈퍼마켓처럼 저울에 달아 가격표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해변 안쪽에 있는 작은 호수. 이곳에서도 역시 주말에 운동을 즐기는 브라질 시민들이 많았다. 그리고 리우에서는 사진 오른쪽처럼 애정행각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포옹과 키스정도는...자연스러운 듯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늘의 마지막은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 해변 사이에 있는 바위산에 올라가 이파네마 해변 너머로 지는 석양을 감상하기로 한다. 코파카바나 해변이 해운대같다면 이파네마 해변은 광안리같은 느낌이다.


서쪽을 보고 찍은 이파네마 해변의 전경. 이파네마 해변의 석양이 그렇게 아름답고 섹시하다고들 하는데, 구름이 많이 껴서 아쉽게도 제대로 보진 못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하루정도 다니다보니 치안문제도 조금씩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곳곳에 경찰들도 많았고, 사람들도 편하게 다니는 것 같아보였다. 역시 사람사는 곳이라 완전 무법지대는 아니구나..싶었다. 진짜 무법지대는 해변이 아니라 시내 곳곳의 빈민촌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 안 가고, 밤에 혼자 길거리를 걷지만 않으면(이건 전세계 어디서나 기본적인 상식)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다이나믹한 브라질에서의 첫날이 끝났다.  

Posted by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