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Day1 (빅토리아 폭포)
11.2 짐바브웨 여행 1일차 (트럭투어 19일차) in 빅토리아 폭포
11.7 리우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작성
크리스텐슨(Christensson) 가족은 스웨덴에서 왔다. 어머니와 두 딸 예니Jenny, 율리아Julia가 어머니의 50세 생일을 맞아 같이 아프리카로 여행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재밌는 사람들이었다.
트럭투어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국경을 넘어 투어의 종착지인 빅토리아 폭포로 향한다. 공식적으로는 20일차 아침에 투어가 끝나지만, 20일차 아침에 따로 만나지 않기 때문에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과 곧바로 헤어지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이삼일정도 같은 숙소에 머물면서 이런저런 액티비티들을 하기 때문에 며칠동안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정든 텐트에서의 마지막 사진. 텐트가 그새 많이 더러워졌다.
짐바브웨(Zimbabwe)는 돌의 땅(?) 이라는 뜻으로, 짐바브웨에 있는 한 유명한 유적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고 한다. 국민소득이 천 불이 조금 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로, 2008년에 끔찍한 인플레이션을 겪어 화폐가 붕괴되어 공식 화폐가 미국 달러여서 ATM에서 돈을 뽑으면 달러가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관광이나 다이아몬드 산업으로 달러가 꾸준히 유입되어서 달러가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책에서만 보던 인플레이션을 이렇게 직접 경험하게 되다니,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나중에 알아보아야겠다. 실제로 50억 짐바브웨 달러 지폐를 기념품으로 파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빅토리아 폭포는 폭포 이름이자 이 마을의 이름으로, 빅토리아 폭포에 여행 온 여행자들을 위한 마을이라 여행관련 편의시설이 모여있다. 간단히 마을을 둘러보고 다음날 할 액티비티들을 예약한 뒤 빅토리아 폭포로 향한다. 빅토리아 폭포는 이 곳을 처음 발견한 서양인인 영국인 리빙스턴 경이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 붙인 것으로, 원주민 들은 모시-오아-툰야, 구름과 번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거금 30달러를 주고 입장. 입구를 지나 조금 걸어가자 번개가 치는듯한 물 쏟아지는 소리, 그리고 물보라와 함께 웅장한 빅토리아 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로 보면 하나의 폭포가 아니라 2km에 거쳐 몇 개의 다른 폭포가 흘러내리고 있는데, 지금이 건기의 끝이라 물이 적어 그런 것이고 물이 많을 때에는 폭포들이 이어져서 하나의 거대한 폭포를 이룬다고 한다.
작은 폭포
메인 폭포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지만, 가까이 가면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 때문에 마치 비가 내리는 것 같아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쉽지 않다.
생각보다 폭포의 물이 적어서 아쉬웠지만, 다음 이과수 폭포에서 더 많은 물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계 3대 폭포를 비교해 보면, 유량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낙차는 빅토리아 폭포가, 길이는 이과수 폭포가 가장 크다고 한다.
우리가 머무른 빅토리아 호텔은 스와콥문트나 빈트훅과 달리 하룻밤에 10만원도 넘는 것 같은 호화로운 호텔이었다. 원래 둘이 한 방을 써야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혼자 큰 방을 차지해서 좋았다.
수영하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바.
여행을 기념하는 기념 티셔츠를 받았다. (사실은 25달러를 주고 샀다. 울며 겨자먹기로 안 살수가 없는 티셔츠..) 5700km면 서울부산을 15번 정도 왕복한 셈이니까, 진짜 멀리도 왔다.
투어의 마지막 저녁은 호화로운 만찬이었다. 남은 15명의 일행 중 7명은 이틀을 쉬고 다시 이동해 탄자니아 혹은 케냐까지 가고, 8명만이 떠나서 완전히 해산하는 건 아니었지만, 정든 가이드랑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이 자리를 뜻 깊게 만들었다.